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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절의 유래와 정신? (2019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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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2,543회 작성일 20-10-0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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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 감사절의 유래와 정신?

 

2019128일                                                                                                                                                                                                                                                                                             이명길 목사

 

미국의 추수감사절 기원은 1620년 지금의 마사추세스 주 풀리머스에 도착한 영국청교도 분리주의자(영어 순례자(Pilgrims)들이 162111월 중 3일 동안 축제로 하나님께 감사한 날이다. 추수감사절 유래를 알기 위해 이를 시작한 순례자들은 누구며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 연방 휴일로 정해졌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청교도 순례자(Puritan Pilgrims)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Pilgrims1605년경 영국 남부에서 존 로빈슨, 리차드 클리프톤 등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청교도 분리주의자들로 교회는 자의적 민주적 공동체이지 결코 국가적 공동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 영국교회는 성경적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예배할 수 없다며 성공회를 이탈 분리 출발했다. 헨리 8세의 사적인 이혼 문제로 케돌릭에서 독립한 성공회는 개혁 바람에 바람 잘 날 없었다. 칼빈의 영향을 받은 죤 녹스는 이미 스코틀랜드 교회를 개혁 장로교를 세웠고 헨리 8세 사망 후 에드와드 왕의 청교도 개혁, 후임 메리여왕의 케롤릭 회귀, 후임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가 교회(성공회) 연합정책 등으로 오랜 정치적 갈등을 마무리한 1559년의 교회일치정책(Uniformity)을 청교도 분리주의자 순례자들은 받아드릴 수 없었다. 이에 분리주의 청교도들은 교회를 이탈 따로 예배를 드렸다.

이런 분리자들에게 영국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1693년부터는 강한 핍박이 시작되자 지하로 숨자 교회 불참자들에게 벌금을 매기고 1593년부터는 로버트 브라운 등을 옥에 보내고 1593년 핸리 바로우 등이 사형을 당한다. 지도자 브라운은 더 이상 지하교회가 불가능함을 인식 추종자들을 데리고 화란 미들버그로 망명한다. 이들이 자리 잡자 1607년경 숨어 지내던 Pilgrims들이 화란의 라이든(Lyden)으로 다수 이주한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화란에서 정착이 쉽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스코틀랜드 메리 아들 제임스가 대영제국의 왕이 되어 다소 핍박이 누그러지는 듯 하자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모색한다. 그런데 제임스 왕의 정치적 상황이 녹녹치 않았다. 결국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청교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 시작한다. 이미 1607년 영국인 첫 도착지 버지니아를 생각했으나 철회했다. 그래서 뉴욕주 허드슨 강 주변에 이민 간 화란 이주민들의 정착지로 결정 1617년 지원자를 모집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원주민 인디언들이 위협적이었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16196월 영국 정부 허락을 받아 드디어 1620760톤급의 Speedwell (1577년 만듬)호를 타고 라이든을 출발 영국의 햄프셔에 도착 더 큰 배 Mayflower와 함께 815일 출발하기로 한다. 110명 중 102명을 선발 승선자와 항해사 등을 정했다. 처음에 타고 온 배가 물이 새어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되자 Mayflower호만을 이용하기로 하고 120명중 102(73, 29)을 선정 탑승 1620916일 출발했다. 이들 중 라이든에서 온 분은 약 절반 정도였으나 성인 순례자들은 28명에 불과했다. 처음 항해는 순조로웠으나 심한 풍랑으로 배 축이 부러지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65일만의 항해로 원래 목적지 뉴욕 쪽으로 가지 못하고 지금 마사추세츠 주 Cape Code1112일 도착한 것이다. 청교도는 소수였지만 지도자 윌리암 부르스터의 지도하에 시편 100편으로 감사기도하며 풍랑을 이겼다. 이미 선상에서 자치 헌장을 만들어 41명의 어른들이 싸인했다. 이것이 미국의 최초의 Mayflower Compact자치법(헌법). 수결 원칙으로 결정,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 법에 따라 공동체를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곳에 이미 살고 있는 인디안들 동태를 살피기 위해 2주간 정찰을 마친 후 드디어 1216(월요)일에 지금의 플리머스항에 도착한 것이다. 도착한 후 지사를 뽑아 민주주의 정치를 처음 시작한 것이다.

 

2. 추수감사절은 어떻게 생겼는가?

 

지난주일 본 난은 미국 추수감사절을 시작한 청교도 분리주의자 순례자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았다. 추운 겨울의 풍랑을 견디며 승객 1명과 선원1명을 잃100명이 지금의 Cape Code에 겨우 도착한 것이 1112일이었다. 육지에 도착했지만 바로 하선할 수 없었다. 인디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들이 Cape Code 주변 탐색 중 백인의 해골을 발견하고는 더 큰 두려움에 쌓였다.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지금의 플리머스 항에 도착한 것은 1216일 월요일이었다. 지금도 미국에 청교도의 첫 발자국이 남겨진 돌을 플리머스에서는 기념물로 집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 그 날이 월요일이어서 그들은 2개월이 넘게 빨래를 못한 모든 옷을 인근의 강물에서 세탁하여 New England에서는 월요일이 빨래의 날로 지켜지는 풍속이 생기기도 했다.

겨울에 도착한 그들은 우선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루라도 쉴 수가 없었다. 그 겨울의 날씨는 혹독하게 추웠으며 이미 그 지역 인디안들을 강타한 전염병으로 땅이 비어있던 곳이었다. 전염병 또한 무서운 적이었다. 결국 살아 남은 100명이 그해 겨울 절반인 50명이 죽고 50명이 남았다. 추운 겨울 신천지 미국 땅을 밟았으나 절반이 아까운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거주지로 정한 플리머스 지역은 Patuxet Indian의 땅이었는데 질병으로 대부분의 종족이 소멸되었다. 이들 중 질뱅에서 살아남은 Squanto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유럽에 노예로 팔려갔다 돌아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청년이었다. 그는 순례자들에게 고기 잡는 법과 옥수수를 기르는 법 그리고 그곳 인디안들에게 통역관의 역할로 이곳 인디언들과 소통하게 했다. 결국 이도 역시 질병이 걸려 죽고 말았다. 이 지역의 추장 Massasoit이 매우 호의적이어서 그의 도움으로 부족한 식량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지금 마사추세츠 주 이름이 되었다. 이런 도움으로 그들은 농사를 지어서 1621년 첫 추수를 하게 된다. 그래서 3일 동안 첫 감사 축제를 거행한 것이다. 첫 감사절은 921일부터란 설도 있었고 1111일이란 설도 있어 아직도 확정된 것이 없다. 왜냐면 그들이 쓴 달력은 지금의 우리의 달력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후 연구가들이 11월이란 설이 많지만 아직도 확실히 확실한 날짜는 모른다. 날짜는 모르지만 기록에 100명 중 남은 50명의 순례자들과 90명의 인디언들이 함께 추수감사 축제에 참여했다. 살아남은 4명의 여자 순례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인디안들이 협력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를 3일 동안 축제로 지켰다. 이들의 정착 역사를 기록한 Whiilam Bradford 지사는 인디안들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고 채소를 가꾸어서 그해 여름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지냈다고 기록했다. 특히 주위에는 야생 터키가 많아 이를 사냥 고기를 먹음으로 터키는 첫 정착민들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동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축제에 터키를 잡아 함께 즐기는 풍속을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이 초기 추수감사절이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추수감사 비슷한 명절들이 있다. 그러나 미국 감사절은 고난 중에 감사하는 감사절이다.

이러한 추수감사절을 국가적 명절로 시작한 분은 초대 대통령 Geroge Washington이었다. 그는 독립 후 1789년 국가적 기념일로 선포하고 의회의 인준을 받았다. 그런데 미국 헌법의 기초자이면서 당시 철학적 하나님을 신봉하던 토마스 제퍼슨은 이를 폐지하였다. 아마 그의 정교 분리 원칙에 반한다고 생각한 까닭이라고 본다.

폐지되어 국가적으로 지키지 못한 추수감사절을 다시 부활시킨 분은 16대 대통령 Abraham Lincoln이었다. 그는 남북 전쟁 중인 1863년 추수감사절을 국가 기념일로 이미 하늘에 계실 신앙의 선배들에게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국가적 기념일11월 마지막 목요일에 지키자고 선포했다.

그런데 1939년에 이르러 자유주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해 11월은 목요일이 5번 있어서 전통적인 감사절 마지막 목요일을 4번째 목요일로 바꾸고 이후에도 마지막 목요일이 아닌 끝에서 2번째 목요일을 감사주일로 정함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1주 앞당긴 것은 성탄절까지 기간을 길게 하여 상점들의 장사 기간을 늘리고자 함이었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까지 연중 최고의 장사가 되도록 하는 풍습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추수 감사절부터 성탄절 장식이 시작되고 상품 구매 촉구를 위한 행사가 시작되니 감사하고 거룩한 성탄절 의미가 희석되기 시작했다. 감사절과 성탄절 의미를 되세기는 날이 아니라 선물을 사고 연말 파티를 하고 모여 땐스하고 즐기는 계절이 된 것이다.

이 후 1942106일 미 의회에서 114째 목요일로 확정 국경일로 선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 추수 감사절 다음 금요일을 Black Friday로 선포하고 성탄절까지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온갖 행사와 함께 상점들이 1년 매출의 상당량을 이 때 팔아 경제적 이익을 남기는 절기가 된 것이다.

교회도 세속에 따라 이런 풍속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 시기에 각종 사회단체들이 기부를 강조하고 헌금 모으기를 시작했다. 길거리 구세군의 자선남비 활동이나 각 봉사 기관에서 온갖 명목으로 헌금을 요구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아마 각자 집에 수 없는 전화가 오고 기부금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요사이는 사이비 단체들이 속출 거짓 전화 모금을 하고 있어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군인, 경찰, 소방대, 불우 이웃, 고아들 각종 사회적으로 불우한 이웃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빙자하여 헌금을 강조하는 전화가 상당 수 거짓으로 돈을 모으는 범죄가 심해진 것이다.

세상은 자꾸만 악해지고 있다. 이제 원래 시작했던 명절의 근본 원인이나 처음 가졌던 선배들의 신앙은 무의미해졌다. 온갖 상업용 가짜들이 이 감사 계절 성탄 계절을 틈타 순진한 민간인이나 특히 노인들 이민자 노인들을 속여 헌금을 강탈하는 일들이 감사의 계절을 악용하고 있다. 미국의 앞날 또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도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 교회가 정신 차리지 못하면 사회가 썩고 혼란을 틈타 온갖 악령들이 심판을 촉진한다. 이런 현실을 바로 깨닫고 감사절과 성탄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매구 중요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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