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알버커키에 반듯한 장로교회 하나가 필요한가? (2019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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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알버커키에 반듯한 장로교회 하나가 필요한가?
2019년 12월 29일 이명길 목사
본인은 2016년 7월 십오 년의 동남아 선교사역을 마치고 노년을 보내려고 알버커키에 이사 와 정착했다. 장로교 목사이기 때문에 장로교를 찾았으나 여러 사정으로 결국 한인 연합 감리교회를 선택 2년 반을 다녔다. 평신도로서 교회를 잘 도우며 적응하려고 했지만 목사도 평신도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타 교단생활이 어려웠다. 작년 말로 교회를 그만 두고 기도하던 중 PCA 소속 알버커키 한인 장로교회를 세워, 금년 7월 초부터 주일 예배를 시작했다.
74세 노인이 은퇴지에 또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 당위성 때문에 고민도 하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 물론 감리교 외에 3개의 교회가 이미 있다. 화란 계통의 개혁교회가 있고 침례교와 주님의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제일 큰 교단인 장로교 교인들이 여기에 많이 오는데 반듯한 장로교회가 없다는 것이 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필요성을 인식 장로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나이 때문에 한 3년 정도 기초를 놓고 젊은 목회자를 모실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개척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목사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도 큰 문제였다. 그래도 아래 이유 때문에 시작을 했다.
1) 장로교는 민주시민 양성의 최적 기관이다.
우리 한인 교포는 미국이라는 자유 민주주의 나라에 이민 와 살고 있다. 미국의 헌법과 정치 체제 및 사회 형성의 뿌리는 영국 청교도들의 신앙과 사상이다.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원리는 성경에 근원을 두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정치의 기준임을 터득하고(칼빈 문화주의) 감독주의를 반대하고 교인이 대표자 장로를 투표로 뽑아 당회를 구성 교회 운영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시작했다. 이 장로교 운영 체제를 국가 정치 체제로 만든 분들이 미국에 온 초기 장로교인들이었다. 그래서 미국산 민주 대의 정치는 장로교와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 개신교는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로 시작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은 교회만 세운 것이 아니라 학교와 병원을 세워 한국인을 근대화시켰다.
이런 기독교의 새 교육을 받은 청년 이승만을 선교사들이 미국에 피신시켜 목사 만들려고 공부케 했다. 그런데 목사가 되지 않고 해방 후 찌들은 민족으로 기독교 건국을 위해 하바드와 프린스턴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감리교 배제 학교를 다녔지만 하바드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청교도 민주주의를 배웠다. 해방 직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불교와 유교의 나라 한국에 기독교 입국론을 기초 미국식 헌법을 만들고 선거제도를 도입 입헌 국가를 세웠다. 최초의 국회를 기도로 열어 헌법을 만들고 1945년 8월15일 대한민국을 세계만방에 선포했다. 이후 70년 한국은 세계적 10대 선진국 반열에 들어왔다. 이것은 바로 기독교 위에 세워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곧 자본주의 국가 체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 시민 교육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실용주의 대가 죤 듀이는 교육 목적을 민주시민 양성으로 삼았다. 민주주의 성공은 성숙한 민주시민이 있어야 가능하다. 시민 교육은 학교교육만으로 부족하다. 대의 민주주의 산실인 장로교회에서 민주주의 방법을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를 국가의 기초로 선물한 한국 장로교회는 민주 시민 양성을 소홀히 했다. 교회 교육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까닭이다. 지금은 아예 주일학교 교육이 없는 교회들이 수두룩하다.
알버커키는 한인 인구는 작지만 한국과 연관이 깊다. 북한 탈출 피난민 모델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이 여기서 요양 결핵이 완치되어 귀국했다.
6.25. 발발 시 트루만 대통령에게 한국 기독교인 50만 구출을 강조 미군 파병을 촉구했던 빌리 그래햄 목사님이 여기서 야외 부흥집회 마지막 날 헌금을 모아 한국을 첫 방문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다. 원자탄으로 일본을 굴복시켜 민족 해방을 선물하고 미국을 지키는 국방 첨단 연구기관이 알버커키 근방에 다 있다. 본인은 장로교 교파주의자도 아니요 장로교만 참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장로교가 보다 더 성경적이라는 것이 장로교 목사인 본인의 확신이다. 장로교인이 제일 많은 한국에서 이민 와 여기 살면서 반듯한 한인 장로교 하나가 없다는 것은 한국 장로교인의 수치다.
2) 예수님 마지막 지상명령은 예배 아닌 교육이다.
반듯한 장로교회가 없다는 증거는 교회 교육의 부재에서 톨 수 있다. 알버커키는 청소년 교육의 황무지다. 물론 교회마다 청소년 교육에 노력한다. 그러나 무늬만 교육이다. 그 예로 교회마다 청소년 전담 교역자가 없다. 어른들 예배 시간에 베이비싯터 하는 것을 기독교 교육이란다. 그런 교육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강한 세속 물결을 이기고 기독교 사상과 신앙에 바로 설 수 없다. 이민자 후손으로 정체성을 못 찾아 방황하는데도 방치 상태로 신앙 사상 교육은 무시되었다. 교회 건물을 지어도 어른들의 예배 장소 위주로 지어 예배하러 모였다 밥 먹고 헤어지고 주중 내내 교회 문을 잠가 논다. 충분한 재정이 없어 교육 목사 못 모신단다. 교인들의 의견으로 운영되는 장로교회는 능히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육하지 않고 예배만 보던 성전을 허무시고 가나안 땅에서 내 쫓았다.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 생활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성경 베끼기를 시작했고 회당을 세워 오늘의 유대인을 양성하는 쉐마 교육을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우리 예수님도 예배를 위한 성전 건축이 아닌 교육을 지상명령으로 남기셨다. 아름다운 성전은 돌 하나 남지 않고 파괴될 것을 주지시켰다. 성전 파괴자로 지목되어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은 교육자로 3년 공생애를 완성하셨다.
중세 케돌릭은 또 교육을 제쳐놓고 교회를 건축해 예배만 드렸다. 평신도는 말씀을 읽지도 못하게 했다. 암흑시대다. 그래서 깨어난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시작했다. 성경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해 읽게 했다. 칼빈은 제네바에 처음으로 공립학교를 설립했다. 근대 공교육 시대를 열었다.
교회 교육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공립학교가 있는데 종교교육이 그렇게 중요하냐 반문할지 모르지만 오늘 서구 공교육은 성경을 배제하고 아이들을 세속화시키는 촉매 역할에 열심이다. 그래서 서구는 다시 몰락의 길로 치닫고 영광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그런 세속주의 첨단 미국에 내 자녀들을 방치하며 산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자녀 교육의 핵심을 잃었다. 반듯한 장로교회는 담임 목사와 교육 목사를 똑같은 사례비로 모시고 교육 정책 우선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우선순위 문제이지 재정 부족이 아니다.
3) 하나의 장로교회로 교회 합병이 필요하다.
뉴멕시코 한인은 2300여명 알버커키에 1500여명의 산다 한다. 현재 6개 한인교회 전체를 합쳐도 150명이 안 된다. 여기에 장로교회 3개가 있다. 이중 하나는 화란 계통의 개혁교회이다. 칼빈주의를 따르지만 역사와 조직 행정이 스코틀란드 장로교회와는 다르다. 하지만 신학은 같다. 칼빈주의 교회다.
본 교회는 작년 말로 교회 예배를 접고 교회 병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해당 교회 기본 멤버들이 병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단 교회 예배를 중지하고 시도하고자 한다.
장로교회 하나는 반듯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확고한 신념이다. 한 교회로 모여 청소년 교육에 앞장 서야 한다. 예배만 드리는 예배당을 짓지 말고 교육관을 먼저 지어야 한다. 장로교가 하나 되면 가능하다. 더 이상 분열하지 말고 이제는 뭉쳐야 산다. 장로교회가 그 본을 보여야 한다. 하나가 못될 이유가 없다. 그러면 한인들이 바라보는 교회 이미지도 달라질 것이다. 목사와 장로들이 먼저 깨닫고 희생해야 한다. 청소년 교육이 잘 되어 한국 기독교 정신과 비젼을 가진 청년이 일어난다면 저들이 미래의 미국을 이끌 것이다. 그래서 작은 교회이지만 이곳에서 “새 이스라엘” 운동을 펼치고 청소년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도록 교육하고 싶은 이상을 접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뜻이 계시면 이런 소박한 꿈들을 펼칠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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