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정치가 되는 위험(2021년 6월 13일 주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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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과학이 정치가 되는 위험
공화당 상원의원 랜드 폴(Rand Paul)이 청문회에서 앤토니 파우치(Anthony Fouci)에게 코비드 19 중국 우한 유출 책임을 추궁한 이후 말 바꾸기 능사인 파우치가 중공군 산하 우한 연구소와 함께 동물 바이러스 인간 접착 연구인 인공 바이러스 개종 실험(Gain of Function)을 공동 연구 협조 뿐 아니라 미 국가예산 지원 사실까지 숨기며 백신 개발에 투자, 돈 벌기에 일념했다는 것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가 주장하는 과학 절대주의가 인간을 위한 과학범주를 떠나 개인의 욕망이나 악마들의 이상주의에 이용될 경우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가져 오는가 이번 팬데믹(Pandemic) 사건에서 생생하게 경험했다. 과학만능주의 핵폭탄이 떨어진 현실이다. 우한 코로나가 인위적 확산 혹은 실수였다면 원인을 제공한 중국 공산당과 파우치의 반인륜적 행보는 60만의 생명을 빼앗아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피해 국가들에게 마땅히 대가를 지불하고 처벌 받아야 마당하리라고 본다. 과학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21세기 지성들도 과학 발전과 개발의 새로운 방향 설정이 절실한 시기가 되었다,
성경은 과학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허용된 인간 활동임을 분명히 한다. 마치 과학은 절대적이고 기독교는 비과학적 신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망상은 무신론의 극단적 표현이다. 마치 맑스주의나 좌파 인본주의 철학이 과학적이라 생각하는 망상은 허구다. 좌파 이상주의는 확실한 우상종교가 아닌 절대적 과학인가? 기독교와 과학은 상반되지 않는다. 마치 과학이 윤리 도덕에 제한 받을 때 발전할 수 없다는 주장은 과학을 종교로 부각시킨 우상 종교다. 성경은 과학을 어떻게 규명하고 있는가?
첫째 과학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시 만물의 존재 안에 둔 질서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학문이다. 성경은 물론 과학책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질서와 공허에서 우주(코스모스:질서)를 창조하셨다. 피조물로 제한된 인간이 천지 우주 만물의 원리와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과학이지 인간이 창조 주가 되는 과정이 아니다. 하나님은 과학의 원리를 발견 활용하는 능력을 인간에게 심어두고 만물을 보존하게 하셨다. 인간이 과학을 이용 절대적 존재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은 전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둘째 과학은 노아 보존 언약 안에 허용된 권리요 의무이다. 노아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신 하나님은 다시 창조 질서를 회복하시며 인간에게 창조 질서를 유지 만물을 보존할 책임을 맡기셨다. 인간에게 과학을 가능하게 했다. 과학은 성경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행해지는 보존 언약 순종이며 적용이다. 그래서 아프면 약을 먹고 의사 진찰을 받고 치료 받아야 한다. 자연의 수많은 법칙은 변함없이 그대로 지금도 계속된다. 우주는 아직도 하나님이 세운 질서 안에서 운행하며 시간과 공간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생명은 재생산되고 계속해서 번성 유지된다. 무한한 우주 법칙의 일부를 안다고 마치 전부를 지배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배척하고 인간이 신이 된다는 착각은 과학자의 참된 모습일 수 없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창조한 법칙의 발견과 적용이라는 대 명제를 버리면 결국 인간을 죽이는 엄청난 반인륜적 무기로 변해 인간 멸종을 자처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위험성을 수 없이 보여 왔다. 원차탄 무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셋째 그러므로 칼빈이 주창한 문화관의 일개 스팩트럼이지 전부가 아니다. 빛은 우리 눈에 한 가지 무색으로 비친다. 그러나 그 안에 7가지 다른 색들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에게 무색으로 보이듯 하나님의 주권은 여러 개의 스팩트럼으로 인간의 활동 영역을 만들도록 섭리하시고 빛으로 비춰주신다. 문학과 역사가 다른 스택트럼이듯 과학도 하나의 빛에 속한 분야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만 가능하고 바로 된 과학 활동이 가능하다. 과학의 한계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인간이 활용하는 분야는 주님 오실 때까지 가능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과학이 하나님 주권 노릇을 할 수 없다.
넷째 그러므로 피조물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개발한 과학이 신이 될 수 없다. 과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과학만능주의는 위험하다. 수단의 영역을 벗어나 목적의 영역이 될 때 과학은 폭력으로 변한다. 무서운 일이다.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적용하여 삶을 편하게 하고 질병을 이기게 하는 범위를 벗어나면 과학은 악한 자의 원자폭탄이 될 수 있다. 지금 공산주의 이상주의자 손에 붙들린 미생물 연구가 세균 폭탄 제조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인간의 무서운 지배욕이 돈의 힘을 빌려 폭발할 때 인류 스스로 만든 지옥 불에서 영원히 불타게 될 것이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자폭이다.
다섯째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빌릴 필요 없이 과학은 이성을 기반한 물질세계에 국한되지 밖의 다른 세계까지 적용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과학의 세계에 이성적 논리적 증명이 가능하지만 이를 벗어난 영역에는 모든 종교적 신념의 추론일 뿐이다. 사회학이 절대 과학으로 가능하지 않다. 영적 종교와 다르다. 이성을 중시하는 21세기가 왜 거짓이 난무하고 사실(Fact)은 하나인데 왜 수많은 Fact가 나오는가? 아직도 대부분의 영역은 종교적 추리와 판단이 비이성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과학을 비판하면 무식하다는 착각은 정말 자기 무식을 드러내는 언행이다. 파우치가 과학을 반대하느냐고 트럼프에게 호통 치는 무식은 그의 무신론에 근거한 자기 신앙 종교 때문이다. 무지가 참 지식을 나무라는 아이러니다.
여섯째 인간의 인식 범주는 이성과 경험 양면에서 얻어진 합성작품이다. 이 두 영역을 통해서 인간은 인식하고 지식을 축적하며 원리를 발견 적용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래서 과학도 필요하고 역사도 필요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영역은 자기 추론을 가능케 하는 양심의 작용이다. 정직해야 한다. 같은 사건을 보는 시각이 있음을 자인하고 자신의 관점을 비판함이 없이 좌파가 보는 세상을 과학적이라고 억지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자기 신앙의 종교적 야만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가 어찌 정반합인가? 정정반도 되고 정정정도 되고 반반반도 되지 않는가? 야만적 이상론, 인간의 속물근성이 과학이란 말인가? 추측의 먼 거리를 선입견으로 제빠르게 판단하는 그것이 종교가 아니고 과학행위인가? 과학이 진리인 것처럼 과대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인간에게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명제 아래 주신 하나님의 은혜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 일어나는 풍랑을 잔잔케 하셨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다. 만물이 신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모범을 보인 사례다. 하나님은 첫 번째 아담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고 보존할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노아 언약으로 인간은 만물 안에 있는 질서를 발견하여 사용하고 만물을 보존하고 다스리는데 사용할 수 있게 하셨다. 만물보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사명이요 은혜다. 우리가 이 땅에 심어야 할 하나님 나라는 만물을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협력하고 복종하여 이 땅에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 하나 되는 나라를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과학이 자체를 위한 학문으로 전락하거나 과학이 인간의 야망과 욕망에 이용되어 정치화 될 때 그 과학은 인간 파멸의 괴물이 된다. 우한 바이러스가 생물학 무기 과정에서 실수로 유출되었고 파우치 박사가 이런 일에 가담하여 과학을 이용하고자 했다면 이미 그는 수억 수백만을 죽인 히틀러나 스탈린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과학은 크리스챤들이 더 열심히 개발 발전시켜야 할 학문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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