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치 전쟁(2021년 4월 4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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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美國)의 가치전쟁(價値戰爭)
2021년 4월 4일 부활주일 칼럼 이명길 목사
지난해부터 요동치는 지구촌을 모두 실감하고 있다. 핵실험 통한 전쟁 위협, 공산당 대량 소수민 학살 고문, 호전적 살상 무기 무력 과시, 숨차게 밀어붙이는 신 맑스 문화 혁명 속도전, 이런 와중에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팬데믹으로 온 세계가 들끓고 있다. 조용한 나라가 별로 없다. 젊은이들은 육욕으로 밤새며 권력자는 부정 축재로 빅택은 좌파 호위무사로 전체주의 인터넷 검열, 수많은 인격 총살의 박살 문화(Cancel Culture) 등,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저질러지는 진지적 전쟁 모습이다.
특히 미국과 한국은 6.25. 사변 후 70여 년간 비교적 평화적 휴전 상태로 경제적 풍요를 누려왔다. 갑자기 좌파 정권이 국가를 점령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법과 정책으로 불안 상승과 함께 실업률 증가, 예측 불가의 미래, 몰아닥친 코로나 19로 그 동안 쌓아 왔던 조용한 삶을 긴장과 초조의 삶으로 바꿔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왜 이토록 어지럽게 만들어버렸나?
겉으로 나타난 한국과 미국 미얀마의 부정선거, 좌파 세력과 연계한 빅 태크 횡포, 동성애를 과장 평등 사회 이상향을 향한 성혁명, 욕망에 사로잡힌 지성인들의 기존 문화 파괴, 더불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팬데믹이 21세기 지구촌을 뒤흔든 지진처럼 보이지만 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밑바닥은 여전히 지구촌 인간들의 정신적 사상적 가치관 지각 변동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지구촌은 불과 몇 년 전보다 훨씬 더 치료 불가능한 정신적 펜데믹에 신흠하고 있다. 이런 대 지진 중심부에는 좌파의 종주국 중국의 패권야망이 전통적 서구문명과의 가치 충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요사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북경 인민대 조선족 교수로 시진핑 주석 책사격인 김찬영 교수의 수년 전 비밀 강의가 이런 중국의 야망을 계획했었고 미국은 서서히 중국의 패권 야망의 밥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코로나 사태 역시 이런 패권주의 플랜의 일부였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중국 코로나는 결국 정복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으로도 기술로도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서구 문명의 고질병 가치 와해는 코로나 백신 같은 것으로 전혀 치료 불가한 싸움이다. 이대로 가면 미국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지성인의 미래는 초저녁 밤이다.
지난 해 좌파 부정선거, 악을 감추는 워싱턴 Deep State 속이 뻔한 감싸기, 주류 신문 매체의 거짓 정보로 단결된 반 보수 기사, Big Tech의 무자비한 보수 공격 등은 미국 자유 민주주의 독립국가 250년 역사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혼란이다. 이 모두가 중국 공산당 기회대로 되는 것이 신기하다. 미국이 사상적으로도 중국의 속국이 되고 있는 실증이다. 미국 건국 영웅들이 천국에서 이 광경을 보고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1776년 회귀 정책은 이런 면에서 민주당 정치 이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트럼프의 미 독립 초기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지금 세계가 진실과 가치에 굶주리고 있음을 잘 간파한 선견자적 관찰이다. 그가 성자란 말이 아니다. 세속주의 좌파 이상주의가 건국 영웅보다 중국식 문화 맑스주의 혁명을 부러워한 나머지 중국 근대화에 눈감고 그들을 통해서 돈벌이에 정신을 판 결과물을 간과할 수 없는 그다. 미국 독립 영웅들이 그토록 사모했던 가치를 버리고 인권과 자유의 고귀함을 욕망의 싸구려 추한 성욕으로 대치하고 말았다. 공산주의의 서양국가 공략을 아직도 모르는 좌파들은 눈이 삐어도 한창 삐었고 물질주의에 중독 당한 정신병자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은 정직의 가치를 닉슨 대통령 탄핵하기 까지 지켜왔던 국가다. 좌파에 물 들은 법조계 인사들이 언제부턴가 진실보다 돈에 무게를 두고 이해관계로 법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사상으로부터 훈련된 미국 사회의 신뢰와 협조와 자기희생의 가치를 완전히 뒤 엎어버렸다. 그것이 지금 정치가의 투쟁으로 변신해 이 나라 초기 기독교의 인내와 오래 참음과 용서와 불쌍히 여김과 자신이 먼저 희생하는 미덕을 파묻어버린 것이다.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가 잘 못된 투쟁 법치주의 승리주의로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헌법적 인권은 기독교의 천부적 불가침 인권을 기초했다. 정부는 국민 개인 인권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권력도 어떤 조직도 사법권도 천부적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런데 사회가 우선이라는 신 맑스주의는 불가침 인권(Unalienable Right) 마저 무차별 짓밟고도 죄책감이 없다. 목적론적 수단 정당화에 목숨 걸고 변증한다. 인간의 가치는 평등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천부적 인권과 자유를 보장 받을 때 존중된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신뢰는 어디서 왔는가? 기독교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종교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상적 정신 혁명 토대다. 준법정신은 중요하지만 자본주의의 피가 될 수 없다. 자본 행위는 법보다 먼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뢰 없는 자본주의는 불가능하다. 법을 가지고 약자를 짓밟으면서 거짓과 선동으로 평등을 앞세운 가짜 희망을 내 걸고 자기 의를 내세우기에 바쁜 법조계가 어찌 자본주의를 성공시킬 수 있는가? 저들은 평등을 핑계한 자기 의에 도취된 착취자들이 될 수 있다. 여호와 유대-기독교 하나님은 인간의 의가 너무도 황당하게 변할 줄 알고 믿음으로 구원의 바탕을 바꾸었다. 신뢰의 가치를 거짓 선동으로 눈가림할 수 있는 인간의 불의를 아시기 때문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신뢰의 바탕에서 천부적 소유권을 누리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일군 시장경제의 산물 아 미국의 오늘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병폐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심장인 신뢰를 무너뜨리뎐 일어나는 부조리를 평등이라는 무기로 뭉개버리는 것은 안전한 사회를 파괴하는 폭력 행위다. 자본주의를 소수 지도자의 부를 일구는 도구로 사용하면서 말만 사회 평등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이다.
인간은 종교적 존재다. 기독교를 핍박 배제하면 종교는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정 반대다. 맑스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아편이라며 종교를 배척했던 공산주의 짧은 역사는 왜 그리 거짓과 불평등과 폭력과 독재로 가득한가? 왜 소수의 권력자들이 신이 되어 불쌍한 보통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는가? 왜 1억 명이나 되는 인민을 학살하고도 실패했는가? 공산주의 투쟁 이론이 기독교의 사랑보다 나은 철학인가? 잠 깨라.
평화는 강제적 평등에서 오지 않고 자기희생을 통한 이웃 사랑에 기인한다. 이런 희생은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으로 본을 보였다. 기독교 사랑은 신이 본을 보인 희생정신에서 기인한다. 이런 기독교를 몰아내고 야수적 투쟁 기질을 인성이라 보는 것이 솔직한 인간관이라 속이지 말라. 인간 최고의 가치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 유지하는 데 있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는 거짓일지라도 양심의 영역이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이 인간 존중인가? 소수자 인권이란 명분 아래 성해방을 부르짖어 성 노예 만드는 것이 해방인가?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절대적 절망은 없음을 안다. 인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기독교 구원 역사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왔다. 그래서 난국을 당할 때마다 특별히 기독교 문화는 다시 진정한 사회 부활해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부정 선거로 미국 좌파의 정권 탈취는 많은 서구 민주 시민을 깨우기 시작했다. 6.8. 혁명 이후의 삶의 권태기를 겪은 젊은이들이 서구 지성인들의 좌파 자유 방종을 눈 여겨 보았다. 좌파 속임수가 들통 나면서 보통 사람들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고 있다. 좌파 지성인들의 흑심을 간파하면서 거짓 평등을 부추기며 자기 호주머니 안보만 철저하게 지키는 사이비 사회주의자의 얼굴을 보았다. 국가 재정만 축내 나라 경제를 말아먹는 것을 보았다. 증세로 얻은 정부 돈 갉아먹으며 반성은커녕 적개심을 창조 반대 세력 박살에 눈 먼 박살문화(Cancel Culture)의 잔인성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BLM들이 시대적 영웅으로 받드는 Floyd 죽음을 이용함을 보라. 정상인가? 그는 영웅이 아니라 범죄 덩어리였고 죽음 원인도 그가 복용한 약물 중독이었음이 드러났다. 지금 좌파 성인화는 사기인가 기본적 가치위에서인가? 너무도 빗겨나간 무자비한 동물적 폭력을 무기 삼는 저들을 보는 양심 있는 사람들은 할 말을 잃는다. 악을 성인화하는 것이 평등인가? 기독교인은 가치전에서 전위대가 되어야 한다. 가치가 이겨야 하고 기독교가 승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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