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2021년 1월 10일 주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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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길 따르라 의(義)의 길을
2021년 1월 10일 주일 칼럼 이명길 목사
우리교회는 새벽기도 때 찬송가 1장부터 2-3장씩 계속 부른다. 평생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찬송이 많아 시작했는데 오늘 새벽“새 찬송가 516장“부르며 영감을 받았다. 지금 미국의 대 위기상황에 대처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 생각한다. 영국인 Nichol H. Earnest(1862-1928: 필명 H. Ernest Nichol)가 1928년 지은 찬송이다. 옥스퍼드에서 음악을 전공 영적 전쟁에 대한 찬송가를 많이 작사 작곡했다.
구원 받은 기독교인은 믿음으로 의인답게 살며 은혜의 복음 곧 의의 길을 땅 끌까지 전파 교육해야 한다. 셋째로 순종하고 옳은 길을 따르는 행동이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 사명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한, 미 기독교인에게 행동하는 신앙을 요구하신다. 의의 길은 생각, 명상보다는 순종과 행동으로 열리는 길이다.
1월6일 밤 부정선거 불구 상하 양원은 주 의회 절차를 무시 선거인단 선거를 통과시켜 헌법을 범했다. 토론 시간까지 단축 주 의회 인준 절차를 생략 투표로 대통령 당선을 정한 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반역이다. 필자도 부정선거로 당선된 바이든을 4년을 참을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어 더 이상 부정선거 생각 말자고 접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흑암 속에서는 작은 불빛이 더 밝아 보인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힘은 없지만 각자가 작은 불빛이 되어 함께 모여질 수만 있다면 한 모퉁이라도 어두움을 밝힐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창조주 하나님이 참 빛이요 복음만이 유일한 세상을 비출 참 빛이라는 사도 요한의 신학적 철학적 전제는 오늘 같은 암흑기에 더 유효하다.
실패한 트럼프가 고통 속에서 미국 역사에 공헌한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미국도 이제는 부정과 거짓으로 승리할 수 있는 야만 국가가임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50년 이민 생활한 필자도 이 점을 받아들이기 참 힘들다.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 국민은 거짓말 않고 부정선거는 어떤 것보다 국민의 반감을 사리라 보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미국의 정치인, Deep State의 만행, 지성인들 좌파 횡포, 대중 매체의 모략, Big Tech.의 표현 자유 침해 등은 거짓의 성공을 부추기고 부역했다. 이런 사회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런 아픈 미래와 국가 타락 민얼굴을 국민이 인식하게 만든 공로가 크다. 이제 미국도 최상이라는 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신앙을 버린 까닭이다. 교회도 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부패한 현상을 들어보자
영국에 잡혀있는 위키리스크 창업자 Julian Assange가 엄청난 외교 비밀을 공개해버렸다. 특이한 것은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큰린턴이 펄펄 살아있는 교황을 직무 정지 브라질 출신 좌파 민중신학 신봉자 프란치스코로 바꾼 정말 충격적 폭로다. 바티칸 대주교도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발표했던 것이 이해된다. 호주인 어산지는 미 육군 정보 분석 요원인 첼시 메닝이 빼낸 75만건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군사정보, 25만 건의 외교 비밀문서를 소지 그가 창업한 위키리스크에 계속 폭로한다 한다. 국민 인식 변화에 필요하다.
그 동안 우끄라이나 연루설이 오가던 바이든 아들 헌터 부정 축재가 만천하에 드러나 버렸다. 헌터 바이든 우끄라이나 무역 센터 옆 농가 지하실을 급습 엄청난 양의 금괴와 컴퓨터 디스크와 많은 것들을 압수했다. 부정축재자 바이든이 대통령이라니! 선거 절차까지 생략 의회가 민주주의에 반역했으니 어찌 침묵할 수 있는가? 소리쳐야 한다. 이번 기회에 트럼프는 가지고 있는 수집한 부패와 부정사건을 다 비밀 해제해 폭로 국민이 썩은 정부를 알도록 하는 것도 큰일 하는 것이다. 워싱턴 웅덩이의 썩은 물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둘째로 트럼프의 미숙한 정치력으로 좌파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무신론 신막스주의는 수십 년을 학문적으로 조직적으로 공 드리며 미국 사회에 침투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돌한 도전들은 이런 조직 바탕 위에서 정치적 성공을 안겼다. 트럼프의 신선한 발상과순진한 정치 행보는 결국 세밀한 조직력과 좌파 진지전에 패한 것이다. 이제 기독교인들과 보수진영 사람들은 섣부른 개혁으로 급진 사회 변화를 꾀하기보다 문화 맑시즘의 진지전을 배워야 한다. 사실은 성경에 예수님의 제자 양육과 전도 방법이 맑스주의 진지전보다 훨씬 우세한 정치방법일 수 있다. 대형 집회, 대형 교회 시대는 끝났다. 이제 예수님의 복음 전파 방법 같은 정치 접근이 필요해졌다. 예수님의 제자 양성 방법은 좌파의 진지전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신앙적이며 더 많고 선한 기독교 복음의 진지 전사(戰士)를 생산할 수 있다.
셋째 트럼프는 신 맑스주의가 정부 국민 침투에 성공 이미 교회, 가정 파괴가 현실로 다가온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했다. 이제 공산주의는 중국이나 러시아나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를 점령했고 이미 공산화 개막을 올렸음을 보게 했다. 상원의 부정선거 용납과 하원의 교회 가정 파괴 움직임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정신 못 차린 공화당은 허수아비 노릇이나 할 것 같다. 팬스 부통령까지도 가짜 신자임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승리한 듯 허세 부리는 민주당 펠로시 하원의장의 미친 행동이 패배자의 분노를 더욱 가중시킨다. 전체 10석이 많은 민주당 6명이 반란표를 던져 겨우 4명 다수로 다시 하원 의장에 재선되었다. 당선 첫마디가 더 열린 선진 국회 되자는 위선으로 아버지, 어머니, 형, 언니, 이런 성적 차별 용어를 쓰지 말자고 의장 직권 상정했다. 첫 의회 개회기도에서 감리교 목사 미주리주 민주당 하원의원 임마누엘 클리버 목사가“Amen and Awomen”이라는 신조어로 개회 기도를 마쳤다. 히브리어“아멘”은 성(Sex)과 전혀 관계없다. 하브리 원어를 신,구교 공히 따로 번역 없이 발음대로 2,000년을 사용해왔다. 감리교 목사 기도는 하나님 외에 이방신들까지도 저주하는 교회 파괴, 가정 파괴 성해방 방조 기도다. 열린 선진국 기도를 신의 저주 주문(呪文)으로 시작했다. 신의 진노가 훤히 보인다. 동물 농장 국회다.
이제 교회는 복음 전파까지도 잠시 멈추고 의의 길을 열어야 할 때다. 행동 결단이 필요하다.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신막스주의 혁명자들 횡포를 더 이상 방관하는 것은 반역이며 불순종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믿음의 후손을 선택한 것은 공도(共道)를 위함이라 창세기 18:19에서 말씀했다. 국민의 깨어 있는 반항에 함께 소리 내야 한다. 반면 교회는 이 때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빛의 자녀로 참 빛을 비추어야 할 의무 때문이다.
첫째 목사들이 성경 신학으로 돌아오는 회개 운동이 필요하다. 신막스주의 미국 침투 전 에 미국 교회가 먼저 독일 관념론 헤겔 역사철학으로 점령당했다. 신신학과 공산주의는 헤겔 역사 변증법의 자식들이다. 성경 권위를 무너뜨린 신신학은 타락을 부추겼다. 민중신학, 동성애 Free Sex, 물질주의 성장학, 심리학적 인본주의 설교 등은 신학 좌경화 현상에서 출발했다. 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공산국의 교회 붕궤를 막을 길이 없다.
둘째 기독교 교육철학 확립으로 교육권 회복에 눈 떠야 한다. 교회 활동에 예배가 첫째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배에 대한 말씀은 요한복음 4장에 한 번 나타난다. 예수님은 구약의 희생 중심 예배를 십자가로 마감하셨다. 교육자로서 3년 생애를 마치셨다. 이스라엘 민족의 성전 중심 예배는 성경교육을 방해한 듯하다. 신앙 교육을 맡은 레위인들은 할 일이 없었다. 이스라엘 세속화는 속수무책이었다. 요시아왕 때 신명기 발견과 교육 강조는 이미 때가 늦었다. 오늘 유대 교육은 포로 시대에 성경 베끼고 회관 세워 교육을 발전시킨 쉐마 교육이다. 예수님도 종교개혁자 칼빈도 신학자요 교육자였다. 하나님이 교회에 준 교육권을 공립학교에서 돌려받아야 한다. 근대 공립학교 운동 전에는 교회가 청소년 교육을 전담했다.
셋째 칼빈 문화관으로 역 침투가 필요하다. 종교는 사회생활의 한 스팩트럼으로 세상과 분리해야한다는 Spearism은 칼빈 문화관과 배치된다. 하나님의 주권 부정이다. 세상과 교회의 다른 점 때문에 세상은 더럽고 교회는 성스럽다며 세상 정치 참여는 안 된다는 분리주의는 반성경적이다.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한 역사주관자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썩은 세상일지라도 우리의 전도와 사랑 현장이다. 더러우니 우리끼리만 살자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다. 기독교 문화 침투로 기독교 영역을 넓히고 기독교 문화의 역 침투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 문화 점령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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