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개혁의 특징 (2021년 1월 3일 신년 주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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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개혁의 특징
2021년 1월 3일 신년주일 칼럼 이명길 목사
지난 해 2020년은 근대 가장 어두웠던 해로 기록될 듯하다. 팬데믹 Corvid 19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며 두려움으로 덮었고 정치방역으로 부정선거까지 감행 정권 탈취 추태가 세상을 어둡고 시끄럽게 한 한해였다. 필자의 50년 이민 생활에 처음 겪은 부정선거는 타락한 인간의 야성과 거짓 지성의 진흙탕이 된 서구 문명 몰락 현장이었다. 동물 농장 수준이다.
이런 정치 사회적 부조리로 분노에 찬 순진한 국민은 갑자기 닥쳐 온 악의 만행 앞에 어쩔 줄을 몰라 괴로워했다. 곳곳에서 개혁의 소리를 내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개혁은 강력한 응집력을 요한다. 응집력이 폭발되는 것이 개혁이다. 이런 폭발적 응집력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것은 힘없는 자들의 불평불만으로 불가능하다. 여전히 사상적, 철학적, 종교적인 원인규명을 통해 지성인들의 사상전환이 우선해야 된다. 정치 사회 개혁은 사상 개혁의 결과이며 사상 개혁은 역시 종교분야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종교 영역이기 때문이다. 목사인 필자가 성경에서 개혁의 지혜를 찾는 것은 전혀 편견이나 무리가 아니고 독단도 아니다. 이스라엘 구원역사는 조물주의 지혜로운 역사행동이다.
히스기야 왕의 부친 아사왕 시대는 종교 혼합으로 어느 때보다 혼탁한 사회였다. 특히 증조부 웃시야 왕 때는 경제적 안정시기였으나 왕의 말년 나병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에 이어 조부 요담왕의 초기 선정으로 회복 기미가 보였으나 남북 동족 전쟁으로 신흥 앗수르에 도움 요청이 큰 화근이 되었다. 이런 국제 정치의 혼돈 속에서 종교 혼합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을지 모른다. 특히 이웃 강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이방 신에 대한 호기심은 피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이방신을 불러들인 혼합종교 정책은 사회를 심하게 분열시키고 국방력은 약화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국가적 사회적 종교적 어두움 속에서 25세의 나이로 왕에 오른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신앙과 함께 정치 사회 개혁의 무거운 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두운 사회 위기를 당한 국가 지도자로서 개혁은 당면한 현실을 타파하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지금 미국과 같이 기독교 신앙적 바탕 위에 이상적 민주주의 국가를 시작 세계 최첨단국가로 우뚝 서온 나라, 유일하게 미국 자유 민주주의를 배운 신생국가 한국이 경제 10위의 나라가 된 지금 좌파 정권 장악으로 겪는 사회 부조리는 어쩌면 매우 닮은 양국의 국가적 위기가 아닌가 한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 시작되어야 할 것인가? 이렇게 부정선거를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권력광 철면피들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는 행동해야 할지 참 막연하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지혜를 구하고 싶다.
히스기야 왕은 열왕기 하 18장-20장, 역대하 29장-32장, 이사야 26-39장에 나타난다. 이스라엘 역대 왕 중 이렇게 선지서 까지 길게 언급한 역사는 없다. 어느 왕보다도 이스라엘 나라에 미친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보여준 왕이다. 그의 즉위 이후 25년 통치 중 첫 13년의 개혁은 어떤 특징이 있었고 미국과 한국의 정치 사회 개혁에 무엇을 제시하는가?
첫째 히스기야는 영적 개혁부터 시작했다. 먼저 국민 개개인부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성결을 촉구 왕부터 모범을 보였다. 무신론자나 비기독교인들은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부조리나 어두운 세력의 점령은 근본부터 치료되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 시회의 혼탁은 나라의 근본인 신앙의 해이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신을 축출하고 이성 아니 자신을 신으로 모시고 이기적 쾌락으로 사는 인간은 야만화 되기 마련이다. 미국의 산맑스주의 침공과 사상 점령은 분명히 사상적 지렛대, 신앙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무신론적 이념 철학은 자신의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자기를 신격화 해 자율적 사상과 행동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피조물의 한계다. 미국이나 한국 정치 사회 개혁은 교회로부터 시작 영성 회복과 목사들의 신학적 회개가 우선되어야 한다. 히스기야의 영적 성결 운동은 어떤 사회 개혁보다 힘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큰 교훈이 되었다.
1720년대의 미국 대각성 운동, 1907년의 장대제 교회에서 시작된 평양 성령 운동은 비슷한 점이 많다.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섰고 한국은 3,1. 독립 운동의 기폭제가 되고 건국 이념이 되었다. 2020년 미국의 수치를 세탁 정상화하려면 바로 영적 운동부터 해야 한다.
둘째 정치 개혁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교육 개혁이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 제사 제도와 함께 3절기를 성전에 가서 지키게 됨으로 민족 신앙 교육이 어려웠다. 방대한 양의 두루말이 성경을 소유하기 어려웠고 열두 지파 소유의 지방에 거주하는 레위 족속의 교육 사역은 거의 불가능했었다. 조직도 없었고 장소도 없었다. 1년에 3회 정도의 성전 예배만으로 영적 성장은 불가능했다. 히스기야가 지방 레위 족속을 재조직한 것은 아마도 교육적 차원 개혁이었을 것이다. 영적 교육의 소홀함 때문에 이스라엘은 외국 문화가 밀려올 때 금방 빠져버려 산당 같은 이방 종교가 국가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히스기야는 바로 지방 레위 족속까지 재편했다. 아마도 신앙 교육 때문일 것이다. 하여간 신앙 교육에 실패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성경 복사를 시작했고 파괴된 성전 대신 회당이 곳곳에 세워져 소위 쉐마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의 세계적 우월성을 탄생시킨 것이다. 사회 개혁은 교육 개혁에서 온다. 미국의 개혁은 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동성애 등 성 자유 교육으로 선민이 될 수 없다. 가정의 중대성과 필요성보다 사회주의 인문학, 성교육으로 욕망의 노예를 만드는 서구 교육은 인간성을 파괴한다. 인가을 동물로 만들어버린다.
셋째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민족 동질성 회복을 꾀한 것이 특징이다. 다양한 문화에서 이민으로 구성된 다양한 미국 사회는 잘못하면 아이덴티티를 상실 목적 없는 물질적 욕구에 빠지기 쉽다. 이민자들에게 어려운 것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일이다. 초기 이민자 영국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 나라라는 이상적 사회 건설을 목표로 기독교를 미국 아이덴티티로 세운 사람들이다. 다국적 이민자가 늘어갈수록 다양한 문화 통일을 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국가를 하나로 묶어줄 사상적 종교적 Identity를 강제할 수 없게 되었다.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문화와 종교 자유를 인정하되 미국을 지탱할 수 있는 종교적 Identity는 필요한 것이다. 미국민의 다원화는 사회적 마찰을 자시 피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자기 문화를 지키며 다른 사람의 문화와 종교를 침해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런데 만족할 수가 없다. 좌파들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은 이 문제 해결을 기독교 종교 자유 침해로 풀었다. 잘못된 방법이다. 다양한 사회에서 자신의 문화가 필요하고 국가적 아이덴티티가 필요한 것이다. 히스기야는 여호사밧과 같이 이방 종교를 문제 삼지 않고 결혼으로 연합한 것이 결국 가정의 불행을 초래하고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앗수르 제국의 위협을 예견한 히스기야는 북쪽 이스라엘에 사신을 파송 예루살렘 명절에 초대하려 했다. 실패했지만 그래도 에브라함과 므낫세 족속에게 보내 두 지파를 회유 함께 했다. 민족 동일성보다 신앙 동일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 통일을 자유 민주주의 기틀인 기독교 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 야심이나 독단이 아닌 가장 효과적이며 최선의 방법이란 확신을 갖는 이유다.
넷째 히스기야는 당시 국제 정세를 바로 파악 국방력 강화로 안전을 꾀했다. 그가 벌인 요새 건축으로 앗수르 침공을 막을 수 있었고 오랜 포위 상태에서 예루살렘 거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국방은 사상이 아니다. 성이 튼튼하지 않고 강한 무기가 없이 국방은 불가능하다. 정확한 국제 정세 분석 없이 복잡한 열강 틈새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미국과 같은 나라가 중국의 먹잇감이 되는 세상이다. 대한민국 같은 약소국가는 무엇보다 공중에 뜬 평화공세로 나라의 평안을 가져올 수 없다. 기독교인들도 기도하면서 성을 튼튼하게 쌓는 느헤미야 신앙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국가 안보를 하늘에서 땅에 내려주시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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