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幽體離脫) (2020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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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幽體離脫)
2020년 8월 16일 이명길 목사
요사이 한국 미디어들이“유체이탈”이란 말 자주 쓴다. 중국에서 좀 살아봤던 필자도 이 말의 한문 뜻과 문맥이 얼른 납득이 안 되어 어리둥절하다. 대부분 한국 독자들은 이런 신조어는 어정쩡하게 문맥 따라 대충 짐작으로 읽는다. 하물며 외국에 오래 산 교포들이야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 한국에서 이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말기부터라 한다. 이후 좌파들이 박근혜 대통령 비판할 때 하도 많이 써 좌파 대표적 공격 용어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좌파 정부를 비판하는 우파 대명사로 자주 쓰이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자로는“유령(죽으면 영혼이 귀신 된다는 동양사상)이 육체를 이탈한다”는 뜻이다. 죽을 때 영이 육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살아 있을 때 병적으로나 약물 등으로 몸이 둥둥 떠 몸 밖의 경험을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out-of-body”라고 할 수 있다. 1943년 G.N.M. 티렐이라는 사람이 저서 Apparitions에 사용한 말로 영혼 여행, 걷는 영혼 등 최면적 심리용어로 지각상실, 정신분열, 전기 뇌 자극 등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심리학적 용어였다. 이 말이 한국에서는 나쁜 뜻으로 변용 김용택씨는“자신이 저지른 일의 책임 회피로 마치 남 이야기 하듯 말하기”라고 풀이했다. 내용이 너무나 청취자 반응과 동떨어져 듣는 자들 현실에 상관없이 하는 책임 면피용 연설을 비꼰 말이다. 너무 순진한 정의다. 하여간 이명박 대통령 말기에 시작 박근혜 시대 좌파가 유행시킨 말이“유체이탈”이다. 필자의 견해론“제일 먼저 회개해야 할 교회 정화 대상 1호 목사가 교회 정화에 앞장서자고 설교하는 등의 책임회피 잔 마리 굴리기”로 뜻을 변환 사용되는 단어라 본다. 한국은 언어의 근본 뜻을 변환시키는 달인들이 참 많다. 한 마디로“책임회피 잔 마리 돌리기”가 유체이탈이다.
이런 말장난은 문화 막시즘 창시자 그램시(Gramsci)에 의하면 가장 효과적 문화 혁명이다. 예로 좌파들이 인권이란 말 잘 쓴다. 현재 검찰 개혁으로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고 있는 문제인, 추미애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한 번도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박해를 거론한 일이 없다. 인권은 현실적으로 반대파 숙청을 의미한다. 인권을 거론하며 바른 검찰총장을 파면하려 든다. 미 독립 선언문과 미 헌법의 불가침 인권은 집어치우고 보편적 아닌 특정자 인권 보호막으로 근본이념을 체색하여 말장난을 한다. 그래서 듣는 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자기들이 인권 찬탈 독재자가 아니라 인권 옹호자라 속이는“유체이탈화법자”다. 좌파는 동서양을 막론 언어 개념을 악용하는 그램시 후손 언어 혁명가들이다.
이런 일은 미국의 정교 분리주의자들 주장에도 잘 나타난다. 정교 분리는 국가로부터 교회 보호가 근본 취지이지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원들은 대부분 미국 독립 국부들이 가진 용어의 근본 개념을 바꾸어 전통문화 허물기에 앞장서왔다. 정교분리로 학교에서 성경을 쫒아내고 윤리를 못 가르치게 했다. 천부적 인권인 신앙의 자유를 말살하는 것이 정교분리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란 용어까지 일상용어에서 내 쫓아버렸다. 지하에서 그램시가 환호하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인의 유체이탈을 살펴보자. 그는 취임사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약속했다. 이 말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살기 좋은 나라 만들 대통령을 뽑았다고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3년 지난 오늘 그 약속은 표 찍은 국민들의 꿈과 너무 달랐다. 사회주의 독재국가 전체주의 남북통일이었다. 국민이 이를 인식하는데 3년 헛세월이 필요했다. 그 꿈만 보는 문제인은 현실이 안 보인다. 자꾸 유체이탈하고 있다. 참 거짓 언어 달인이다. 이 모든 말은 연설문 써준 놈 책임이지 대통령 내 책임은 아니라는 뜻인지 어리둥절하다. 대통령의 경제 현실 파악은 완전히 외계인 같다. 국고 풀어 임시직 조금 늘려 놓고 한국이 선진국 중 고용지수가 크게 향상됐다 우긴다. 아무리 고용시장 통계 자료를 들이밀어도 막무가내다. 그는 조국이나 윤미향 같은 부정부패 챔피언들을 옹호하며 그들 위해 법까지 고치려 한다. 전혀 양심의 가책 없는 철면피다.“나라가 네 것이냐”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유체이탈 화법은 기독교계에도 너무 흔해 할 말이 없다. 필자와 같은 목사는 어쩌면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하나님 말씀 전하고 진리 선포에 앞장섰다면 충분히 밥값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성경보다 세상 철학이나 자유주의 좌파 사상으로 역시 말장난이 심하다. 그래서 천진난만한 교인들이 속는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유체이탈 말장난을 들어보자.
필자는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임을 확신하고 고백한다. 성경 그대로가 하나님 말씀이다. 그러데 칼 발트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말씀 개념을 확 바꾸었다. 발트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포함된 것이므로 글자 모두가 하나님 말씀은 아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접할 때 성령께서 마음에 하나님 말씀이 되게 한다. 성경은 말씀을 포함했지만“감동된 내용이 비로소 하나님 말씀”이다. 발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을 찢어 나누고 파괴할 때 그럴듯한 신정통주의를 만들었다. 부딪치는 감동만이 하나님 말씀이라 변환했으니 발트신학 설교자들도“말씀” 선포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경보다 듣는 청중을 위해 세상 지식이나 철학 사상에 집중 감동 연구에 힘썼다. 어떤 성직자는 예배 시 성경봉독 후“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고 꼭 덧붙였다. 심지어 설교 시 희극 배우보다 더 웃기고 예화로 청중들 눈물을 짜게 하고 감정 폭발을 진리 탐구보다 더 힘썼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식해지고 예화만 뇌리에 남는다.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보다 예화 잘하고 철학자나 책 인용 잘하는 자가 유명 설교자가 된다.
한국 신정통주의 신학 대가인 모 신학교 학장 한 분이 뉴욕에서“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집회를 했다. 알고 보니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신정통주의 집회였다. 한국이 성경을 무시하고 “말씀 만들기”에 주력하다 보니 성경 내용 선포보다 교회 성장학, 강의 예술, 인간학이나 가르치는 신학교가 얼마나 많은가? 성경 구절을 자기 취향이나 청중들 귀를 즐겁게 하도록 취사선택해서 감동시킬 수 있는 설교만 하니 죄를 꾸짖는 설교나 구속역사의 깊은 뜻은 외면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죄와 무서운 심판 설교는 사라지고 교인들 위로나 하고 적극적 사고방식 같은 인본주의 심리 강연을 하고 있으니 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누가 구원의 큰 뜻을 깨달을 수 있을까? 성경을 왜곡하니 하나님이 누구시며 나는 무엇이며 예수님의 구원은 무엇이며 기독교 삶은 어떤 것인지 복음은 어떻게 전해야 하며 교회가 무엇인지 근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성경신학도 언약신학도 역사신학도 조직신학도 하석학도 모른다. 성경 분해만 집중 전통적 해석을 부정 반박하는 것이 마치 새로운 이론인양 철학박사 학위 수단 삼는다. 하늘나라 건설보다 파괴에 앞장 선 좌파 신학 박사가 양산된 이유다. 좌파 자유 신학자들이 신학교를 점령 전통적 신학용어를 마구잡이로 변개 신학생들과 교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자유주의 좌파 신학교들이 현재 한국이나 미국 신학교 70% 이상이니 할 말을 잃는다. 이렇게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아예 내놓고 교회 핍박에 앞장선다. 김X민, 김X옥 같은 하바드 자유주의 신학 이름이나 파는 가짜 신학자들이 공개 성경강좌라며 활개치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이나 미국교회 얼굴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를 아직도 참아주심이 정말 은혜다.
예배는 어떤가? 예배당이 아니라 쑈 극장을 크게 짓는 것이 아직도 유행이다. 예배자가 다 함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소수 음악가들 전문 음악 즐기는 청중 모집이 교회다. 죄 지적 빠진 적극적 사고나 회개 없는 심리 위로가 말씀 선포다. 하나님께 영광 아닌 사람께 영광이 변형된 예배 용어다. 오경 중 특히 레위기를 보자.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려고 구약 예배 제사제도를 하나님이 직접 세밀하게 규정하셨다. 불결한 인간이 하나님께 함부로 접근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짐승으로 드린 구약예배를 십자가로 바꾸신 신약 예배 모범을 만들어 신성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예배 쑈를 위한 대형 무대 장치가 필요 없었다. 인본주의 예배로 변형된 자유주의 신학이 빚을 내어 대형 건물을 짖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180여개의 대형 교회 건물 매물이 한국 시장에 나왔다니 하나님의 진노 코로나 효과인가 보다. 예수님이 교회 건물 지어 남기셨던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선택된 사람 모임이다. 교회가 먼저 유체이탈을 시작한 열매가 이렇다. 기독교가 먼저 눈물로 회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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