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시비 기준과 한계 (2020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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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시비 기준(異端是非基準)과 한계(限界)
2020년 11월 1일 이명길 목사
이단 시비는 기독교 역사와 함께 한다. 이단 시비는 대다수인 주류가 비주류를 이단시한 정치적 이단시비였다. 원래 유태교가 기독교를 이단시했다. 초대 교회 이단시비는 예수의 신인성에 집중되었다. 이후 성경의 삼위일체 교리가 시비 기준이 되었다. 성경적 기본 교리 기준이다. 그런데도 이단으로 몰려 사막으로 피신한 무리들 속에서 이슬람 종교가 탄생 오늘날 기독교 최대 박해 세력이 되었다.
중세 케돌릭 교회가 서구를 지배하면서 교회 내의 이단적 시비는 줄어들었다. 성경 위에 군림한 교황 무오 교리는 이단 시비를 극형으로 잠재웠다. 종교개혁 직전에는 성경 번역자를 화형에 처했고 불란서 개혁자들 휴그놋을 무참히 죽였다. 이러한 교황주의에 반항“오직 성경”“오직 믿음”“오직 은혜”를 부르짖던 용감한 개혁자들은 일어나 스스로 이단이 되었다. 결국 신교가 자리 잡게 되자 케돌릭 이단시비도 그치게 되었다. 오히려 신교들이 성경 기준으로 케돌릭을 이단시하는 풍조는 한미 등 신교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성경 위 권위가 이단이다.
이단(Heresy)이란 단어는 사이비종교(Cultic)와는 구분해야 한다. 이단은 같은 종교에서 전통적 대다수의 일반적 신앙에서 벗어난 교리적 이탈자나 집단을 일컬으며 사이비 종교는 전혀 다른 종교로서 사회에 악을 끼치는 소수 집단들을 일컫는다. 21세기 다원화 시대에 내 종교 밖의 다른 종교를 대상 시비 거는 것은 종교 전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성경적 기독교는 칼과 총으로 기독교화 하는 것을 금한다. 복음전파는 무조건적 하나님 사랑을 기초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단시비 기준이 모호 혼란스럽다. 자기 교단의 교리는 물론 있다. 그러나 타 교단을 시비할 때는 경우가 다르다. 같은 교단 내의 교리적 이견 토론 수준을 정치적 목적에서 타 교단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이로 인해 수많은 교회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이단시비가 근본적으로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정치적 이단시비의 전근대적 행태를 버리라는 말이다. 더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구체적 이단시비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자신들 교리를 타 교단 잣대로 적용하지 말고 공통분모 성경을 기준 삼으란 말이다. 기독교 전통에 이단 기준은 언제나 성경이었다. 그런데 성경의 권위를 무시 무너뜨리는 교단들의 이단시비는 자가당착적 정치노름에 불과하다.
기독교 초기 이후 이단 시비가 많은 것은 18세기였다. 개혁 후 신생 국가들과 신교 교세 증가 특히 미국 독립을 계기로 신교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수많은 교단들이 탄생한 시기다. 성경 해석들이 이단시비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특히 미국의 대 각성 운동과 교회당 예배를 벗어난 야외 집회의 회개 운동은 점잖은 구신자(구파신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당연 이단시비가 불붙기 마련이었다. 이를 성경적 이론으로 방어한 요나단 에드와드 같은 학자들의 신학적, 지성적 변증이 대각성운동의 정당성을 방어했다. 정통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 독립과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통한 신정부는 국가로서 청교도 정부를 고집할 수 없었다. 미국이 종교 분리와 종교 자유를 천부적 인권에 포함시킴으로 교단끼리 이단시비 문제제기는 점점 불가능해진 것이다. 교단 자치 자결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성경의 기본 요점 교리를 공유하는 교단끼리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교단끼리 상이점은 교단 스스로에게 맡겼다. 내 교단 잣대로 타 교단을 이단시비하는 것은 기독교 내 싸움으로 자멸하기 마련이다. 의견이 다를지라도 최소한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으면 교단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래서 교단이 많아진 것이다.
한편 미국 독립 시기에 서구에서는 사상적 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하나님을 배척한 인본주의 이성 철학의 창궐이다. 국가 건설 당시에 벌써 이신론자 Jefferson 등과 타협 헌법을 만들었다. 종교분리 원칙을 수용 타협함으로 그래도 청교도적 정체성을 지닌 다수가 자유민주주의 미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자칭 이단이 된 종교개혁자들이 살아남은 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자명한 기준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도 인본주의 이성철학으로 성경의 권위가 상실되면서 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18세기에 일어난 독일 이성주의 철학의 한 분파가 된 신신학은 성경의 절대 권리를 박살내는데 앞장섰다. 죄인의 이성이 조물주 성경을 난도질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 이단시비 기준은 권위를 잃었고 각종 이단 집단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18세기 19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났다. 이로 인해 기독교는 혼란의 시대를 초래했고 신자들은 점점 교리에는 관심을 잃고 개인 자율권으로 자기 종교를 선택했다. 미국 대형교회의 발단이다. 신신학 도래와 남북 전쟁 등으로 미국의 기존 교단들이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세상을 밝힐 불빛을 상실해버렸다. 교단의 결정이 성경 위 권위로 등장했고 분명히 죄라는 성경을 무시 동성애나 가정파괴 정당화가 총회 결정으로 성경 위의 법이 되었다. 이런 틈을 타 교회 안에도 사회주의 운동이나 신 막스주의 성해방운동 문화 막시즘이 자리하게 되었다. 이들에게서 배운 한국의 유학파 목사들이 박사를 쉽게 따기 위해 신신학에 물들어 성경을 도외시함으로 한국 교회도 인간 물질 중심 대형화로 말씀 경시 인기 중심 설교, 돈 위주의 교회 팽창주의로 오늘의 타락을 이끌어온 것이다. 평신도는 성경적인데 목회자는 자기 불신을 숨기며 성경 밖의 설교에 집중했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 반성경적 신학을 도입 무신론 사회주의 공산당을 협조하는 교회로 전락했다. 그런 집단들이 성경을 믿는 자들을 이단 시비한다. 성경에 검은 것을 희다 한다.
성경에 동성애가 죄라 했으면 죄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을 무자비하게 심판한 역사적 사례로 경고하는데 동성애 성해방 등 신성한 가정 파괴 집단을 지지하는 이들이 아무게 박사 목사라며 목을 뻣뻣하게 세운다. 도덕적 비판이 기독교 이단시비 기준이 되어버렸다. 물론 도덕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도덕보다 믿음을 의로 여기는 이신칭의 종교다. 믿음이 하나님 눈에는 모든 선행보다 더 위이다.
어떻게 동성애 차별 금지법을 1000명이나 싸인한 교단이 이단 운운할 수 있는가? 성경의 말씀 개념을 변용 마음의 감동이“말씀”이란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하나님이라는데 발트주의자들은 설교가 말씀을 만든다 한다. 하나님도 만드는 자들이다. 성경 핵심 개념까지 바꾼 그들이 이단 아닌가? 이단들이 이단을 논하는 것은 가치혼란을 자초할 뿐이다.
또한 이단 시비 한계는 근대 국가의 정교분리 원칙이다. 국가가 교회를 핍박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느 한 교회가 국가도 다른 종교도 지배할 수 없다. 교회는 총과 칼이 없다. 국가 권력 없는 교회의 이단시비는 종교 분쟁만 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헌법 자체가“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방 종교를 무관한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바알 종교를 치지 않고 이스라엘이 종노릇하게 했고 바벨론 종교를 두고 그 안에서 이스라엘을 포로 생활하게 했다. 다만 그 속에서 독특한 여호와 신앙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에 요구하셨다. 신약 시대 선교 역시 타 종교 제거하고 정치적 하늘나라를 세우라 한 것 아니다. 평화적 말씀 전도 방법이 하나님 나라 건설이다. 기독교가 이슬람교와 다른 것은 한손에 성경, 다른 손에 칼이 아니라 사랑을 드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한계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국가 질서 유지다.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한에서 타 종교와 공존하기에 성경을 믿는 자들끼리 내부 총질을 그치고 우리의 신앙자유를 지켜내야 한다. 애국 목사 이단시비 전 신신학자들이 먼저 자기 이단성을 회개해야 나라와 교회가 산다. 신신학자들은 성경 떠난 자신부터 회개하고 개똥신학부터 버리라.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와 이후 성경으로 이단시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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