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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낄끼 빠빠” (2020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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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3,271회 작성일 20-10-0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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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낄끼 빠빠

 

2020628일                                                                                                                                                                                                                                                                   이명길 목사

 

요사이 유투브 시청자가 참 많아졌다. 나도 대중 매체보다 신속하고 솔직하고, 교양 프로그램도 많아 자주 본다. 유푸브로 한국 현실을 많이 보고 들으니 답답하고 실망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신조 약자(略字)가 많아 이해가 더디다. 인터넷 댓글은 악성 신조어 범벅이다. 근래 급조된 신조어는 따라잡기 참 힘들다. 언어 인격이 타락하니 말이 만신창이가 된 것 갔다. 옥스퍼드 대학이나 북경 어언(語言) 대학처럼 신조어나 외래어를 마구 쓰지 말고 학문적으로 걸러서 표준말을 만들어 공용어로 보급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문화의 혈액과 같아 순수한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한 육체가 되는 것과 같다.

엊그제 김광일 조선일보 평론가의 유투브 제목이 낄끼 빠빠였다. “낄 때 잘 끼고 빠질 때 잘 빠져의 준말이었다. 중간에 끼는 경우 들고 나는 지혜를 가지라는 충고다. 문제인 대통령이 미, 북간 중간에 끼어 지혜롭게 하지 못한 결과로 한국 안보는 망치고 미, 북 양쪽으로부터 불신과 무시당하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문대통령도 미, 북 중간에 끼여 북한에 경제 제제를 풀어만 주면 평화가 저절로 올 것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트럼프를 적당히 속여 북한의 경제 재제를 풀어줄 수만 있다면 해볼 만한 도박 아닌가? 그런데 허위 중재 사실이 들통나버렸다. 중간 역할 잘못으로 평화 보다 오히려 전쟁의 위험이 커졌다. 양자 간 타협을 위해 거짓말도 해야 하고 악인 줄 알면서도 포용해하 되고 진리를 악과 섞어 협상해야 되는 중간 입장은 쉬운 역할이 아니다. 성사되면 유익이 크고 어느 한쪽이 승리해도 자기 살아날 길이 있지만 실패하면 오히려 양쪽으로부터 화를 자초한다. 결혼 중매쟁이가 평탄치 못한 부부로부터 평생 욕을 먹는 것은 흔히 보는 일이다. 목사는 싸움에 말려들지 말아야 하며 결혼 중매를 정말 조심해야 한다. 두 가정을 동시에 잃게 되는 위험이 따른다.

중국의 중용사상 영향으로 한국인들은 중간에 끼거나 중간 입장을 취하는 중도사상이 팽배하다. 중용이 지혜로 통한다. 저의 조부께서는 산에도 강물 가에도 살지 말며 선두나 맨 끝에 서지 말라 자주 말씀하셨다. 예수 믿은 후 이런 중도 사상이 얼마나 무능한 이기주의자 한국인을 길러냈는가 절감했었다. 사상적 중도나 의견의 중도는 혹 있을 수 있겠으나 진리와 빛은 중도가 없다. 진리 비 진리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양극뿐이다.

인간은 창조 시 중간자로 지어졌다.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신 목적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보다 높여 만물과 하나님과의 중간 역할을 잘해 만물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결혼으로 부부가 하나 되도록 언어 선물을 주셨다. 부부가 소통으로 하나 되는 것은 기본이다. 가정이 하나 되고 이웃과 하나 되고 교회가 하나 되고 사회를 통합하고 국가가 연합되고 지구촌이 하나 되어 모든 만물까지 하나님과 하나로 만유를 통일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임무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유혹 중간 역할을 벗어나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교만을 심은 것이다. 남편의 사명 이행을 도와야 할 배필이 오히려 신이 되도록 협조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죽음의 삶을 사는 고난의 생을 시작한 것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후손들도 죽음의 위협이 지배하는 어두움 속에서 살게 되었다.

사탄의 간계로 중간 입장을 버린 타락한 인간이 사상적, 신앙적 중간입장을 취하는 것을 자기중심 행위로 본다. 중간 역할을 위해 자기 범위를 확장하고 자기 역할로 자기를 판단자로 높이는 교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촌수가 없는 부부 사이에 중간자가 끼면 불행한 것처럼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유일한 중보자로 세우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끼인 벽을 십자가로 헐어버린 것이다. 하나님과 사이에 중간은 없다. 직접 남을 위한 중보 기도는 필요하나 인간 중보자는 훈련을 요한다.

구약시대 영적 지도자는 중간자였다. 지도자는 이런 의미에서 일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간자다. 성경은 하나님을 위로 모시고 백성을 잘 지도한 중간자(지도자)들을 축복했다.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선지자, 예수님이다. 무엇보다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져 중보자로 오셔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순종 구원을 완성하셨다. 지도자는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탄이 실패케 한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창된 중간자 본을 보여주셨다.

중세 암흑시대는 신자와 하나님 사이에 사제가 중보역할을 시작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버렸다. , 인 관계에 끼어들 중간 역할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런데 사제들이 자기들 뿐 아니라 성모 마리아를 끼워 넣었다. 성자들도 끼어 넣었다.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지 않고 인간이 고해성사를 받고 용서를 선포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과 대면케 한 십자가의 효력을 회복시켰다.

근대 인본주의 계몽주의자들은 무식한 백성을 진리로 인도해야 할 의무를 외면 아예 하나님을 없애버리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었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 방정식으로 역사의 주관자를 축출했다. 공산주의가 그들의 열매였다. 보통사람과 하나님의 중간자를 자처한 지성인들의 황포였다. 중간 횡포자의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을 배출하고 김일성을 만들었다. 하나님을 배제했다고 하나님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창조주요 역사 주관자요 주권자다. 인간자율권을 선언한 서구 지성은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을 자처했다. 톡톡한 심판을 받고도 정신 차리지 않았다.

현대 무신론 좌파 막시스트들은 어떤가? 정치적 공산 혁명 실패를 경험하고 막시즘을 보완 문화침략의 새로운 방법을 도입 했다. 서구문화의 기저인 기독교를 말살해야 막스주의가 성공한다 확신했다. 그래서 기독교 가정을 파괴하는 계략을 세웠다. 성욕을 이용 부부 관계를 파괴하도록 이론화했다. 성욕의 중간 이론을 정립하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성은 양성 남자와 여자관계를 사랑으로 증진시키는 매개체다. 이로 자손을 낳아 가족을 구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런 남녀 양성 사이에 각종 방법의 성 행위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청소년 아이들로 선택의 권리를 증진시켰다. 2 성해방이다. 동성애는 이런 운동의 가정 파괴 공략의 주체다. 과학이나 유전학이나 생물학적으로 양성 외에는 없다. 그런데 진리를 수호해야 할 교회까지 이런 성 횡포에 동조 만유통일의 중간 역할을 버리려 한다. 많은 교단이 동성애를 인정 성 차별 금지법을 묵인하고 있다.

근대 중간 횡포자는 매스컴이다. 중간 매체의 생명은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일이다. 그런데 전달자의 이념과 사상을 섞고 권력자의 힘에 아부하느라 왜곡하고 가감하여 잘못된 정권의 앞잡이가 된다. 공산당들은 혁명을 위해 중간 과정에 거짓 선동을 필수적 과정으로 삼았다. 국민을 속이고 혁명을 달성하는 것이 정의였다. 매스컴의 횡포는 미국에서도 너무 심하다. 이들은 한결같이 반기독교 성향이다.

옛 한나라당 박근혜 탄핵찬성자들은 자기들 죄를 덮으려고 중도보수라 자칭했다. 미래 통합당을 만들고 좌편향 중도 정치인을 다수 공천함으로 보수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중도자가 많으니 중도 정당이 되어야 이긴다는 망상에 빠졌다. 진리 편에 서지 않고 적당히 중도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진리를 외면한 자율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의견이 많고 중도라고 찍지 않는다. 진리는 명확하다. 중간이 없다. 이념의 중간을 자율주의자들은 찬성하지 않는다. 불란서 톨러런스가 당시 좋게 보였지만 그 결과는 실패였다. 미국의 청교도들이나 유대 전통주의자들은 지독할 만큼 이념이 확실했다. 아직도 세계를 지배한다.

구원은 인간 회복이다. 인간의 본분인 만물과 하나님 중간에서 하나 되는 일꾼으로 부르신 것이 구원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시켜 하나 되는 본을 보이셨고 하나 되는 선구자로 우리를 부르셨다. 이 때문에 부부간에 하나 되고 가족 간에 하나 되고 교화가 하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너와 함께 사는 세상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이며 기독도가 할 일이다. 예수님은 만물의 화목제물로 죽으셨다. 그래도 중도가 필요하면 낄끼 빠빠를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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