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비가 오는 날 (2020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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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비가 오는 날
2020년 7월 26일 이명길 목사
제 기억에 작년은 여름비가 자주 왔었다. 금년 들어 여름 가뭄이 상당기간 오래 계속되었다. 요사이 2,3일 동안 낮에도 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가 내리다가 목요일 밤에는 제법 땅이 젖도록 비가 왔다. 거의 매일 아침 등산하는 산에 나무들이 생기가 돌고 들풀들이 살아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생명 부활의 즐거움에 찬 풀과 나무들의 소리겠지!
흔히 비오는 날을 궂은 날이라 부른다. 시골에서 젊은 날 농사지으며 30리 걸어 학교 다닌 필자는 폭우에 대한 기억이 많다. 학교 가기 전 정읍천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어 보통 때는 돌다리를 건너지만 폭우가 쏟아지면 생명 걸고 목까지 잠기는 급류를 책가방 위로 들고 건너야 했다. 넘어지면 그만 급류에 죽을 수도 있었다. 특히 수확기에 시도 때도 없이 가을비가 내리면 밤잠 못자고 볏단을 치우고 곡식을 거둬야 한다. 뜬 눈으로 학교 가는 날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날은 확실히 궂은 날이다. 그런데 알버커키 사막에 살다 보니 비오는 날이 참 좋은 날이다. 미 동부 비교적 습한 지역에서 40여년을 살다 사막에 이사 온 필자에게는 저녁에 가습기를 틀어야 잠을 잘 수 있는데 어제 저녁은 창문을 열어두고 비오는 소리 들으며 단잠을 잤다. 비 소리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금년은 세계 모든 비가 중국에 뿌려지는 모양이다. 강우량이 수백 년 만에 처음이란다. 사모와 함께 충칭에서 배 타고 우한까지 장강 강물 따라 3일을 선상에서 잠자며 여행한 일이 있다. 장강 협곡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때 세계 제일의 싼샤 땜을 보면서 중국의 막강한 기술력과 능력에 감탄했었다. 코로나가 발생한 우한 시민은 장강 홍수로 매년 고생하는데 땜을 막아 많은 국가 기밀 기관이 모여든 전략 도시가 되었다. 요사이 극심한 강수량으로 인해 땜 자체가 붕궤 위험에 처했다니 놀랍다. 이 뿐 아니라 메뚜기 때가 라오스에서 건너와 운남성 일대 삼림과 농경지를 먹어치우고 있다니 엎친데 겹친 격이다. 한 동안 별 어려움 없이 급성장한 중국인데 금년 들어 우한 폐렴 발원과 함께 미국의 경제 제재까지 더해 과히 천재지변이라 하겠다. 중국인들 스스로 말하기를 나라 전체가 전채지변을 당하는 것은 지도자가 천명을 어겼기 때문이란다.
필자가 아는 한 중국인은 공산당이 우한을 기독교 제거 모범지로 정하고 그 동안 교회 십자가를 부수고 교회 견물을 기중기로 밀어버렸단다. 심지어 성경에 공산당 용어를 삽입하여 재번역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했다. 교회 건물을 트랙터로 민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처음 걸려 죽었다는 소문까지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양자강 하류는 남경, 상해 등 대도시가 즐비하다. 중국 경제 중심부다. 대부분의 원자력 발전소가 동부 해안에 있어 이들이 물에 잠겨 사고 나면 직격탄을 맞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런 물난리에 한국은 무슨 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줌국엔 치산치수를 잘하는 왕조가 태평성대를 이룬 좋은 왕조로 친다. 폭우는 정말 궂은비다. 21세기 첨단 과학이 폭우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사막에 비오는 날 창밖을 보면 마음으로 즐겁지만 이런 재앙 소식에 비를 조절할 수 없을까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장차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영리한 로버트를 만들어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단다. 중국이 이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다. AI 시대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다. 미국이 화성 가는 로켓을 쏘아 올리자 중국도 며칠 후 쏘아 올렸다. 과학이 왜 비는 조절 못할까? 신이 없다며 자신을 믿는 저들이 이미 신이 되었음에도 할 수 없다니 공산주의가 허구 아닌가? 사실은 매년 중국은 비가 안 올 때 폭탄을 터뜨려 가믐 지역에 비가 오게 하고 있다. 북쪽 황하는 물이 나려오다 북쪽 내몽고 쪽으로 틀어 흐르기에 추운 지역을 돌아오며 매년 강물이 얼어 상류 쪽에 물난리를 동반한다. 그래서 황하의 얼음을 폭탄으로 깨뜨린다. 이런 중국이 천재지변으로 한꺼번에 재앙을 맞으니 시진핑이 천명을 어겼다는 말을 감히 하는 것이다.
초창기 우한 폐렴을 잘 못 대비하고 숨기는 일에 급급하다 온 세계가 이 질병으로 몸살 앓게 했다. 이 병이 끝나면 중국을 향한 질병 피해 국가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줄을 이을 모양이다. 21세기 과학이 먼지보다 작은 생물도 아닌 바이러스에게 치명타를 입게 된 것은 무신론 인본주의 과학만능 문명의 수치다. 인간은 전혀 신이 될 수 없다. 거짓과 선동으로 점철된 사회주의자들의 교만의 극치다. 중국의 자연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임에 틀림없다.
사실상 성경은 자연 재앙 자체가 인간에게 저항으로 주신 하나님의 징벌임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연을 잘 다스려 만물과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다스림의 왕권을 부부에게 주셨다. 서로 도와 한 몸 되는 다스림이 하나님의 형상 소유자의 특권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꾀임에 빠져 이 언약을 어기고 말았다. 생명을 저당한 창조 언약의 절대 명령을 어기고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체소인즉 내가 흙으로 도아 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다. 자연의 불순종 자연의 저항은 범죄로 인한 형벌이었다.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은 인간에게 순종하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다스림 받아야 할 자연은 인간의 뜻을 반항하고 저희들끼리 서로 죽이고 잡아먹는 타락이 함께 했다. 자연은 순종보다 인간이 하는 일에 반항하고 때때로 재앙이 되어 인간을 괴롭혔다. 순종해야 할 자연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반항하게 된 것이다.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 재해 역시 하나님의 진노이며 인간이 타락할 때 자연도 함께 타락한 결과이다. 인간에에 반항하고 서로 잡아먹고 죽이는 자연 세계는 원래 하나님이 만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세상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오셔서 만들 세상은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땐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6-9)라고 하였다.
필자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다닐 때 세계적 성경신학자요 설교자 클라우니 박사는 예수님의 풍랑을 잔잔케 하신 마가복음 4장을 설교하면서 “바람아 잠잠하라” 명령하신 것은 예수님의 초능력 신성을 보이신 사건이라기보다 제 2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바람도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라 했다. 참 충격적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인간이 회복된 후 자연을 다스리는 왕권을 표출한 기적이란 말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본 새로운 세상은 제 2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인간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미래임을 증명하셨다. 자연이 인간에게 순종하는 세상이 앞으로 올 하늘나라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피조물의 호소를 이렇게 적고 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19-20). 자연도 하루 속히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어 돌아와 자기들이 순종하는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그런 자연 탄식을 들어야 한다.
인간이 저 비를 명령하여 통제할 수 있다면 노벨상 깜이다. 그런데 머리 좋은 한, 두 사람에게 주는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자에게 주시는 은혜다. 너무 황당해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 같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헛것을 보았단 말인가? 그가 예언한대로 오신 예수님은 거짓이란 말인가? 바울이 말한 자연의 탄식은 헛소리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가 자연에게 명령하면 순종할 것이다.
비가 산에 사는 나무들에게는 생명이 되고 중국은 천벌이 된다니 비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비 자체야 축복이지만 상황에 따라 축복도 재앙도 될 수 있다. 중국 폭우와 메뚜기 때와 우한 폐렴은 중국 뿐 아니라 이 재앙을 보는 우리 모든 세계인들에게 경고가 되었으면 한다. 정말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라고 나무도 꽃도 비도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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