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회복의 기회 (2020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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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회복의 기회
2020년 4월 26일 이명길 목사
작년 11월 쯤 시작된 우한 폐렴이 불과 반년여 지나면서 전 세계를 꼼짝 못하게 정복해버렸다. 세계 전체 확진자의 1/3에 육박하는 선진 미국도 국민 대부분의 사회활동을 금지시키며 가택 연금으로 사람 못 만나게 하고 소통을 끊어버리는 고립 정책을 벌써 2달이 넘게 계속하고 있다. 코로나 피로증으로 가슴이 터져버릴 지경이다.
조선일보 이명진 논설위원은 4.16.자 칼럼에서 “코로나 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다.”고 했다. 성인 54.7%가 고립감, 무기력, 건강염려 및 두려움을 호소하고 오랜 “방콕”생활(방에 콕 박혀있는 생활이란 신조어) 탓에 “확찐자”(살이 확 찐 자)가 10명중 4명이라고 보도했다. 터키는 이혼률이 4배 늘었고 중국도 21% 증가했단다. 외출 제한으로 부부간, 가족 간 폭력이 24% 늘었고. 한국은 아파트 이웃 간 소음 다툼도 40% 증가해 이를 피하기 위해 까치발로 아이들이 걷는다고 하니 장기간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질병이 물러가도 정상적인 사회생활 회복에 장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아니 앞으로는 먹고 살 돈이 없어 병 걸리더라도 가게부터 열자 할지 모른다.
인간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적 존재로 지음 받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결혼 않고 사는 스님이나 사제도 절과 수도원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 사람과의 만남, 관계 정립, 더불어 사는 방법은 인간 존재의 본능이며 근본이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고립에 익숙해야 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하필이면 이번 유행병은 만남을 근본적으로 방해하는 특이한 질병이 되어 잠시지만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감옥생활로 피로감이 증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필자는 전번 칼럼에 코로나 사태는 하나님의 특별한 진노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그 예로 문화 막시즘의 결정판 동성애 키어 축제가 심한 서구 나라들에 기성을 부리고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나라들을 코로나 통계 수치로 나열해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내리는 진노라면 우리는 이 질병을 2가지 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무엇이 정말 심각한 근대 국가들의 문제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진노의 이유를 바로 인식하는 일이고 2번째로 언제든지 역사를 통해 가르쳐주고자 하는 뜻을 찾아 깨우치고 가르쳐 다음 세대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삼는 점이다. 유대인들이 나라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노예 생활할 때 소위 쉐마 교육을 발견 성경 복사를 시작했던 새로운 유대주의 운동이 좋은 예들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 기독교도들은 이 사회 흐름의 방향을 진노로 얻은 교훈으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이 고립 기간에 얻을 수 있는 장점은 가족 간의 소통과 관계 개선일 것이다. 평상 시 부부간에도 직장생활로 얼굴보기가 쉽지 않았다. 질병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부부, 자녀들이 장기간 함께 집에 칩거하는 일은 근대인들에게 보기 드문 일이다. 싸움도 하고 소란도 피우겠지만 오랜 만에 부부간에 함께 생활하고 대화하고 자녀들과 시간을 갖는 것은 강제적이긴 하지만 가족관계 개선의 절호의 기회다. 동성연애, 결혼 회피, 성해방 등 가정 파괴 문화를 접하고 사는 아이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가정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절호의 기회라 믿는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조금 더 잘 알고 대화 방법을 모색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습관을 익히며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든든한 가족관계 설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은 부부간 대화방법, 부모 자녀 간 의사 소통방법 등을 성경적 방안등을 찾아 교육하고 권장함으로 신앙 성장에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멀리 사는 가족끼리 아니면 매일 만나던 친한 친구였으나 못 만나는 친구, 그 동안 관계를 소홀히 했던 멀리 있는 옛 배꼽친구들을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소통을 시작 교재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이런 일 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어 이를 이용하면 고립 생활이 훨씬 덜 고달프로 새로운 소통 방법을 익히는데 도움도 된다.
셋째로 교회 정상 예배가 불가능함으로 교회마다 인터넷을 이용 예배, 설교,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터넷 시대를 열고 있다. 현재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소통 도구를 이용, 보다 폭 넓고 많은 계층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새 시대에 이런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우한 폐렴 재앙에 들어있을지 모른다. 과거 유일한 혁명적 소통 기구였던 전화가 나쁜 사람들로 인해 전화 회피 시대를 맞아 전화가 무용지물이 되어 한심했었는데 전도의 기회를 잃고 있는 때에 하나님은 이런 질병으로 새로운 소통을 열어가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단점 중 유의할 것은 게으른 습관과 심리적 고독과 절망감 의심병이다. 우선 경제 활동을 못해 먹고 살 일로 가장들 책임이 무겁다. 시간이 남아 늦잠자고 놀던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경찰은 모두가 도둑놈으로 보이고 의사는 모두가 환자로 보이듯 사람 만나기가 두렵다 보니 모두가 다 코로나 보균자로 보이니 사람을 만날 필4가 있는가? 믿는 것이 기독교 삶의 핵심인데 보균자 의심까지 더했으니 날 죽일 살인자일지 모르는 그 사람을 어떻게 그냥 만난단 말인가?
소통의 기술이 발달하고 대중이 고성을 지르는 현장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고독이 현대인의 심리 병인데 강제적 고립은 이를 더 부추기고 중압감에 시달리는 삶을 더 절망으로 이끌고 있다. 이런 질병을 세상 심리 치료자가 바로 고칠까? 여기에 적극적으로 기도하며 소통 해소에 기여해야 할 기관이 다름 아닌 교회가 아닌가?
초기 기독교는 침략과 공포 정치로 사회 그늘에서 신음하는 군중들의 이웃이 되어 그들을 먼저 고립에서 해방하도록 복음 전도와 성경 공부 봉사활동으로 극복하게 했다. 그 비밀과 방법을 익힌 단체가 바로 교회다. 아마도 이번 코로나 질병이 물러가면 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할지 모른다. 초대교회와 같이 소그룹 성경 공부와 교재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을 조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제자 운동의 게릴라 작전이 절실하게 요청되지 않는가?
이제 듣든 말든 소리치며 노방 전도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중을 모아 병 고치는 기적으로 성령세례를 방언이라며 참석자를 감정 격화시켰던 부흥회 시대도 끝나간다. 대형화 교회를 중심한 물질만능주의 권위 시대도 끝이 보인다. 예배 중심의 예배당 교회 건축보다 기독교 교육 앞세우는 소위 교회당 시대가 오고 있는지 모른다. 소그룹 교회와 소그룹 활동을 통해 점진적 사회 변화를 꾀했던 초대교회 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이 일을 코로나 병으로 익히고 있다. 결국 로마 대 제국이 예수 앞에 무릎을 꿇었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살아있던 가정 교회는 세계를 열고 복음에 굴복시켜 서구 사회의 정치 사회 종교적 사상적 학계 교육계 문화계 근간을 형성할 수 있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가 망하는 때가 새로운 발전의 기회가 되곤 했다. 중세 콜레라로 유럽 인구 1/3 이상이 생명을 잃었어도 이 질병으로 중세 봉건 사회가 무너지고 노동의 가치가 높아졌고 교황이 하나님이라는 잘못이 무너지고 소수 무리들로부터 성경으로 돌아가 종교 개혁의 산 역사로 발전 근대 국가 사회를 이룬 것처럼, 아니 초기 알렌산드리아가 흑사병으로 인해 망해 갈 때 죽음을 무릅쓰고 가족들이 버렸던 시체를 장례하고 병들어 죽은 아이들을 간호하며 이기적 헬라 지식인들 도시를 변화시켰고 기독교 세계화에 공헌한 선배들이 기독교회사에 빛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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