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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적 양심 회복이 가능한가? (2020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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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2,953회 작성일 20-10-0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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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론적 양심 회복이 가능한가?

 

2020517일                                                                                                                                                                                                                                                                이명길 목사

 

이른바 조국 사태는 작년 89일 문대통령이 전 서울 법대 교수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태 전말을 본 재미 동포나 한국의 지성인들은 심한 상처를 받았다. 서울대, 버클리 대, 서울 법대 교수, 청와대 민정수석 등 경력 최고 엘리트다. 그의 논문은 자신의 머리에 주사파 정신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공산주의자다. 민정수석 재직 중 코드 인사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언론계 장악 일등 공신인 그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벌인 산더미 같은 비리가 터진 것이다. 딸을 의사 만들기 위해 무시험 입학, 불법 장학금 지급, 논문 부정, 거짓 인턴, 아들의 대리 시험, 거짓 인턴 증명서, 사모펀드 등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부정부패 원흉을 검찰 개혁 목적으로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임명자 피임명자 모두 양심적인 사람들인가? 이런 자들이 공의를 집행하는 사법부의 수장이라니 어처구니없다. 전광훈 목사 주도의 103일 광화문 집회는 이에 분노한 국민 300만 이상이 모인 역사상 초유의 군중 집회였다. 그런데 이후 4.15 선거 결과는 오히려 사상 최대의 주사파 재집권 아닌가? 정부도 국민도 양심이란 단어를 아예 지워버린 것 같다.

선거 대승 후 불거진 컴퓨터 조작 부정선거 의혹은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무관심이다. 통계학과 컴퓨터를 아는 몇 사람만 애타게 부정선거를 외치고 있으나 좀처럼 국민대다수가 움직이지 않고 의혹이 풀릴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법조계, 선관위, 정권, 공무원 모두 양심을 어디다 버렸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양심이 사라진 어둠의 세계다.

요사이 터진 소위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 비리사건은 어떤가? 위안부 할머니를 팔아 많은 기부금을 거둔 윤미향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92세의 이용수 할머니가 터트리지 않았으면 이 엄청난 시민단체 비리는 영원한 비밀이 되었을 것이다. 가관인 것은 국가 보조 13억원을 받아 위안부에게는 쥐 꼬리만큼 주고 사용처 비공개를 고집하고 여자들이 무슨 술을 그렇게 좋아해 공금으로 한 저녁 술값이 수백만 원에 달한다. 위안부를 위한 기부금을 개인 구좌에 입금하고 자기 동료 자녀들 장학금으로 사용한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니 할 말을 잃는다. 말로 할 수 없는 비리를 저지르고도 사과는커녕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놓고 잘못이 없다고 잡아떼는 철면피가 되어 있으니 이들의 양심은 도대체 어디에 도적맞은 것일까?

왜 무신론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은 눈 번히 뜨고 용납 안 되는 행동에 잘못을 못 느끼는 것일까? 내로남불의 가책을 못 느낄까? 양심이 작동을 하지 않는 까닭이다.

사회주의 지도자들이나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는 혁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정의 잘못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목적만 달성하면 악의 과정도 선의로 변하는 혁명 철학 때문이다. 과정 자체가 투쟁인데 양심 따위야 눈에 보일까? 그래서 속이고 조작하고 공작하고 이기면 모든 것이 의가 되는데 양심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양심을 잃으면 범죄 천국이 된다.. 대부분의 악행과 범죄는 사람의 눈을 피해 비밀리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막고 바로 잡을 수 있음은 양심의 작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회에 드러나는 것은 빙산일각이다. 사회정의를 세우고 공의를 집행하라면 각자의 양심이 살아있어야 한다. 양심을 살려야 한다.

양심에 대한 견해는 민족, 문화 종교,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한자로 良心이란 단어는 선량한 마음이란 뜻이다. 우리말 사전에는사물의 선악을 구별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하려고 하는 도덕적 판단이라고 했다. 도덕과 윤리적 행동을 조절 절제하도록 주어진 본질적 기능이다. 아마도 교육 문화 혹은 천부적으로 사회 집단이나 국가적 민족적 집단의 윤리 가늠자이다. 사람들이 어떤 규범이나 죄를 범했을 때 스스로 가책이 되거나 죄책을 느끼게 하는 마음으로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양심은 사실상 개인적이며 서로 다르고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대체적으로 어떤 문화의 기본 윤리적 기준을 어겼을 때 일어나는 두려움 특히 잘못에 대한 징벌의 두려움, 자신의 체면, 자화상의 손실에 대한 두려움 등이 양심 혹은 양심의 가책으로 묘사된다.

영어로는 Conscience라고 하는데 라틴어의 conscientia(joint knowledge, feeling)이란 의미에서 온 말이라 한다. 집단적 지식, 감정이 양심이란 말의 근원이었다. 아마도 개인의 양심은 그가 속한 집단의 지식과 사고를 자기화한 판단 기준이란 의미가 있나 싶다. 그래서 법을 바탕으로 개인이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원리 혹은 힘이라 했다. 서양 양심은 사회적 기준을 바탕으로 작용하는 개개인의 도덕 기준과 조절력이다.

성경은 양심을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바울은 인간 내면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양심을 하나님을 아는 능력으로 보는 점이다. 마음에 심어진 어떤 고정된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명해주신 판단력이다. 양심은 변할 수 있고 훈련될 수 있고 성장하거나 악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양심이 검은 사람이 있고 흰 사람이 있다. 양심이 살아서 하나님 임재를 직감하며 윤리적 행동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양심적 기독교인이다. 양심이 병들면 선악 구별이 불가능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고 숨기며 변명만을 일삼고 회개하지 않는다. 양심이 죽으면 결국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악을 저지른다. 어떻게 양심을 갈고 닦으며 훈련 보다 밝고 맑고 깨끗한 양심을 기를 수 있을까?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절대적 윤리와 도덕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은 애급의 노예 이스라엘을 구원, 삶의 치료 목적으로 법을 주셨다(15:26). 선민의 윤리 기준을 세워 바르게 사는 것이 수많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양심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길이다.

둘째 기도와 묵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임재를 체험하며 사는 영적 생활은 양심을 자라게 하는 온실 역할을 한다. 진실한 기도를 생활화하는 자의 양심이 검어질 수 있겠는가?

셋째 사랑의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삶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 일은 양심의 작동 없이 불가능하다.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징벌의 무서움을 깨달아 용서 받고 그 기쁨으로 사는 것이 양심 성장 훈련이다.

넷째 자신을 바로 보는 훈련을 통해서 자란다. 맑은 하나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야 보다 나은 자화상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거울은 겸손과 죄의 인식으로 자기를 가장 적나라하고 진실하게 보게 해주는 참된 거울이다. 깨진 거울은 양심을 파괴한다.

양심의 훈련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절대자 인지 능력이 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불가능하다. 자기가 하나님인 무신론자나 인본주의자들은 자기가 자기 기준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양심을 깨끗하게 가꿀 수 없다. 그래서 무신론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양심 타령하는 것은소귀에 경 읽기牛耳讀經이다. 말로 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도 큰 소리 치고 있는 철면피들에게 양심도 없느냐고 묻는 것이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다. 외부의 항거나 강력한 대중 투쟁 방법뿐이다.

신자들은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의 양심을 갈고 닦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자기 죄를 빨리 자인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 훈련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쳐야 한다. 성경은 믿음과 회개를 같이 취급한다. 회개하고 믿어 양심이 살아 작동하는 가정과 사회가 되어야 행복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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