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말(언어)의 상관관계 (2020년 5월 24일) > 목회칼럼

본문 바로가기
  • book 월간 새 이스라엘

목회칼럼

영성과 말(언어)의 상관관계 (2020년 5월 24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3,092회 작성일 20-10-08 18:26

본문

                                                                   영성과 말(언어)의 상관관계

 

2020524일 이명길 목사

 

언어와 글자는 문화의 뿌리다. 삼위 하나님도 하나 되는 데 언어로 소통하셨다. 하나님께서 영적 존재로 인간을 창조, 소통으로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 되고자 지으신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언어가 글자화 되고 말이 더욱 표준화되어 각 나라 민족의 고유문화는 말과 문자를 뿌리삼아 발전했다. 문화권은 언어권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점은 언어의 다름 때문이었고 세종대왕의 치적은 한글 발명으로 중국 한자 문화에서 벗어나 한글화를 통한 문화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발견케 한 점이다.

근대 민족 문화에 자국어 성경 번역이 크게 기여한 것을 본다.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성경이 독일어 기준이 되고 한국의 근대 문화 문명의 발전도 기독교가 한글 발전과 표준화에 큰 공을 세운 점이다. 조선과 일제 시대 문화 침범을 이기고 한국의 정체성을 세운 것은 한글 발전이 큰 몫을 했다.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고 그래서 초기 기독교 한글학자들에 의해 한글 표준화와 사전 편찬 등을 통해 보통 국민의 기본 언어, 글자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기독교 한글 운동은 미국 대각성운동의 영적 흐름을 전달한 초기 선교사들 영성이 한글 발전과 순화에 매진하게 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요한복음은 시작한다. 이 말을 헬라 사상 로고스로 해석하는데 히브리 사상과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70인역 학자들이 적당한 헬라 말을 찾을 수 없어 로고스라고 번역한 것을 사도 요한도 로고스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헬라 사상의 로고스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은 태초에 계셨고 태초에 소통했고 태초에 유일신 하나님이셨고 그래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소통으로 하나 된 하나님이 말씀을 하나님과 같은 권위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영감으로 언어화된 성경의 권위는 곧 하나님의 권위이며 인간이 이성의 잣대로 난도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도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바로 신성의 대표적 형상인 언어를 인간이 사용케 되었으니 하나님 형상의 기능이 언어다. 말은 공간에 잠깐 있다 없어진다. 말이 시간을 넘어서려면 글자로 표현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어와 문자는 문화의 뿌리가 된 것이다. 인간 문화는 하나님의 소통이 원천이며 열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는 무신론적 물질주의 문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신론자들은 언어를 동물 소리의 진화로만 보기 때문에 영성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두뇌 진화로 언어 진화기 이루어졌고 살아남기 위한 계급투쟁이 언어진화의 방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어의 폭력성, 부패성, 사기성 등 영성 타락과 언어 타락의 연관성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고 연구 가치도 못 느낀다. 그러나 언어는 영이신 하나님의 제일 큰 관심이셨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인간 언어로 하나님 뜻을 선포했고 영감으로 성경을 쓰게 하셨다. 그래서 언어는 인간이 가진 천부적 영성이다. 영이 인간을 대표하듯 말이 인성을 대표한다. 언어가 하나님인 것처럼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며 정체성이다.

우리가 어떻게 영성을 지닌 영적 정체성을 찾고 지킬 수 있는가?

상실된 인간이 영성을 회복하는 첫 걸음은 언어 회복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이 예배와 찬양과 기도이다. 다 언어적 표현이다. 하나님과 하나 되려면 통로인 영성 언어 회복이 먼저다. 말씀을 듣고 예배하고 찬양하며 감사하고 기도하는 천국 언어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하나 되는 길이며 피조물 인간의 존재 목적이 회복되는 길이다. 언어회복이 곧 인간회복이다. 특히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민족이라면 말부터 선민이 되어야 한다.

또한 소통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진화론적 투쟁이 아니라 정복하고 다스리는 의무와 권리로서 언어 순화 전환을 말한다. 언어 소통은 원래 하나 되는 수단이었다. 가정이나 사회의 기본 기능은 좋은 언어 소통을 바탕으로 협력과 사랑, 배려와 도움, 위로와 격려로 바른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영적 인간으로서 바른 인간관, 바른 세계관, 바른 가치관, 바른 교회관을 가져야 된다. 그래서 언어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양심의 회복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 양심이다. 양심을 되찾아 순결하고 착한 양심으로 키우는 것이 언어 패러다임을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어떻게 언어 타락이 오는가? 인간을 협력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계급투쟁과 욕구 충족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언어 무기로 살인을 일삼는다. 언어폭력으로 상대방을 단번에 꺾을 수 있게 아픈 상처를 입혀야 한다. 상처 주는 말은 더 심한 언어폭력으로 되돌아온다. 서로 상처를 입혀야 굴복한다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공격하고 배신한다. 무신론자들은 자신이 신이 되었기 때문에 언어 타락이 필수 무기다. 말로 분열시킨다. 그래서 무신론 사회주의가 침범하는 곳은 나뉘고 패가 갈라진다.

십자가로 만유 통일(연합)하시려는 예수님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교회론을 다룬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소통하는 방법을 소상하게 교훈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4:25-32에서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어 하나님과 만유가 하나 되게 하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4가지 소통 문제를 제시한다. 1) 정직, 2) 분노조절, 3) 대체 본능, 3) 천국 언어다. 온전한 소통은 정직에서 출발한다. 거짓은 소통의 최대 걸림돌이다. 거짓 선동자들이 소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 자가당착이다. 계급투쟁으로 일어나는 분노 또한 소통의 큰 적이다. 인간 본능적 욕망을 봉사로 대체하면 선행으로 욕망을 채울 수 있다. 또한 더러운 말을 삼가고 천국 언어를 사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투쟁 아닌 협력 사회 건설은 언어 교육 노력과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가 먼저 언어 교육 해야 한다.

지금 미국이나 한국이나 언어가 급격하게 타락하는 것은 투쟁 사회로 변하는 증거다. 갑자기 언어폭력이 심한 것은 신막수주의 문화 막시즘의 침투 때문이다. 욕망을 충족하는 비정상이 대중문화의 주제다. 추하고 더러운 말이 영화계, 문학계를 점령하고 미술이나 음악이 과격성을 주제 삼아 쾌락을 자극한다. 이런 매체가 언어 타락을 방조한다.

어떻게 언어 순화로 영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첫째 언어가 영적인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언어를 주신 하나님은 무서운 징계로 언어불통을 사용하셨다. 말씀을 못 알아듣게 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징계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방언장에서 방언 주신 목적을 언어불통 곧 못 알아듣게 하는 것으로 이사야서 28:11절을 인용했다. 소통이 큰 축복이며 불통이 가장 무서운 진노다.

둘째 바울의 소통 방법을 실천하는 일이다.

정직과 분노는 소통의 적이다. 욕망은 단순하게 하지 말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선한 행동으로 대치 선의 가치로 자부심을 키워야 한다. 천국 언어 연습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언어가 바뀐다. 중생 초기의 증거가 언어 변화다. 십자가로 화평이 되어 하나 되게 하신 주님을 생각하라.

셋째 소통의 중요성을 찾아야 한다.

소통은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가 하나 되는 유일한 통로다. 자기 분노를 말로 표현하지 않고 혼자 가슴앓이 하는 한국적 사고는 원한과 분노의 씨앗이지 예술적 미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통을 배우며 성장한다.

넷쩨 문학 연습이 필요하다.

문학을 관심 갖고 글 쓰고 시를 짓고 좋은 말로 연설하는 언어연습이 도움 된다. 안 보이는 상대에게 댓글로 언어폭력 하고 얻는 승리감은 야만인이요 짐승이나 다름없다.

다섯째 인격 형성 바탕이 되는 인문학으로 교양을 쌓아야 한다.

가치를 존중하고 정체성을 살리는 인문 교육이 인격 형성에 필요하다. 배워야 언어 순화의 필요성을 안다. 생존경쟁의 본능에 사로잡힌 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좋은 말을 사용하기 힘 든다.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본질과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