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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반기독교 코드(2021년 10월 17일 주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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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3,830회 작성일 21-10-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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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께임(Squid Game)의 반기독교 코드

 

요즘 한국 영화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전 세계 관람객 1,100만을 넘어 No.1 시청률을 기록 인기폭발 중이다. 강대국에 이민 와 살면서 약소국의 잠재적 열등의식을 짓누르며 살아온 한인 동포들은 이런 대박 때마다 은근한 자부심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에 50년을 넘게 살면서 이미 서구문화 전통을 익힌 기독교 목사의 눈에는 이런 비인간적 잔인성을 가감 없이 영상화한 좌파 영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알고 보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미국 좌파 영화사 Neflix가 다 가져간단다. 뛰어난 한민족 천재성이 돈에 파묻혀 살인, 도박, 결투로 서구 젊은이들 뇌에 각색될까 두려움이 앞선다. 이것이 조국(祖國)을 잊지 못하는 미주 한인인 나 혼자만의 고민일까?

더군다나 영화를 만든 황동혁 감독인디 와이어(Indie Wire)라는 매체에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의 좌익사상이 얼마나 현실 파악에 둔한 좌파의 우물 안 개구리 안목의 소유자인가 안타깝다. 황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돈 많은 게임 주관자가 트럼프란다. 얼마나 미국에 대해 무식 폭로인가? 유럽 국가가 좌파 권태기로 들어서 우파로 돌아서고 있는 현실에는 눈 감고 지금 바이든 정부가 죽 쑤고 있는 미국을 외면하고 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트럼프싸이코가 아니라 황감독 자신이 때 지난 이상주의 비현실 망상자(싸이코 패스)이다. 필자는 요사이“Stealth War(Robert Spalding: 중국 공산당의 미국 침공)”을 통독중이라 오징어 게임보다 훨씬 재미 있어 영화를 볼만한 가치를 발견 못했다. 이미 유투브에 간추린 영화와 많아 비평 칼럼 쓰기에 충분하다. 아홉 파트의 게임 내용 중에 심각한 반기독교 코드가 있어 한인 기독교 관람자들에게 문제점을 인식하도록 칼럼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다음호까지 미룰 수 없어 서둘러 쓴다.

첫째 황동혁 감독의 설명대로 영화 곳곳에 묻어난 좌파적 세상 보기가 정말 무식하고 삐뚤어진 엉터리임이 드러났다. 돈 몇 푼 걸고 게임에 목숨을 거는 치명적 현실이 과연 기독교와 자본주의 때문인가? 역사를 공부하고 가슴에 손 얹고 되돌아보라. 불평등은 오히려 자연적 현상이다. 기독교 이전 사회에 그 때보다 사회 불평등은 훨씬 잔인하고 독재적이고 흔한 현상이었다.

기독교는 국가적 사회적 평등 노력이 요구되자 경쟁이 아닌 사랑으로 치유하고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고 희생하며 순교했다. 무력을 동원하는 정치적 독제 평등이 아니라 사랑과 구제로 도우며 자연적 구별까지 인간이 뜯어고치려 하지 않았다. 죽이고 내가 살아남는 투쟁이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랑하는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태어나 돕고 협동하고 사랑으로 같이 살아남는 가족을 통해 인격을 연마하며 세상에 봉사 발전시켜왔다. 근본 문제는 인간 내면에 있는 죄이지 그 죄를 부추겨 보다 평등한 세상 만든다는 인위적 강제 동원의 꿈이 성공한 적이 없다. 현실 문제를 남 탓하지 말고 자신부터 점검 수립해가는 인격 소유자를 만드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다.

둘째 좋은 머리로 일류 대학에 들어가 지성을 쌓지 않고 쓰레기 좌파 구닥다리 같은 구시대 유물론 사상에 빠져 세상을 바로 보고 포부와 시각을 넓혀주는 교양공부를 게을리 한 무지가 복잡한 현대 문제 핵심을 잘 못 건드린 우를 범한 대표적 영화라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다시 말해서 영화가 좀 생각하도록 만들었는데 빗나갔다는 뜻이다. 우선 황감독은 영화인으로 다른 사람보다 지각이 뛰어나다. 관람객 흥행만을 위해 애 쓴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자기 목숨 걸고 일확천금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 비참한 현실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으면 좋겠다는 그럴듯한 철학적 명제로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런 폭력적 살인 경쟁 영화가 철학적 명제를 일으킬 만 하며 출발이나 방향에 좌파가 진정한 가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먼저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삐뚤어진 눈으로 세상과 역사를 파헤쳐 만든 공산주의가 북한, 중공, 구 쏘련, 베네주엘라 세계에서 제일 못살고 독재로 살기 어려운 나라다는 것을 왜 외면하는가? 이런 시대적 변화에 특히 한국 좌파들이나 좌파 영화인들이 맹인된 것이 이런 영화 덕택 아닐까?

셋째 그는 유물사관을 선()으로 인권과 자유를 악()으로 보는 소수 사회주의 부르죠아 계급의 도치된 윤리관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물으라. 자유 민주주의 덕분에 먹고 살게 된 서구 젊은이들 인격 살해를 서슴 없이 저지르며 저들의 권태 심리를 피를 보는 살상으로 자극하는 돈벌이 흥행이 얼마나 현대 젊은이들의 인격 살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가 보다.. 자본주의를 반대하면서 왜 자본주의 독버섯이라는 좌파 수엠프 Neflix를 이용 한국보다 한 회사의 이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는가? 만일 투쟁이론이라면 그것부터 싸워서 이기고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한국의 강남 좌파는 지본주의 이익을 최대 누리면서 자식은 미국 보내고 반미주의 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악의 뿌리라니 자가당착이다. 미국의 수엠프들이 아직도 프롤레타리아들인가? 그들의 세계 지배욕에 왜 투쟁하지 못하는가? 트럼프는 그런 사회를 개혁하고 있고 영화인 그는 버러지 사회악 자유 민주주의 파괴자 수엠프를 도와주고 있진 않는가? 지금 70퍼센트가 넘는 미국의 풀뿌리들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아는가?

넷째 영화의 가장 중요한 시대적 문제점의 본질은 인간의 불평등이 아니고 죄인 것을 비껴간다. 세상을 어둡게 하는 죄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이 인간 낙관주의 실패작 2차 대전 후의 실존주의 근대 서구 철학자와 문학 예술가의 공통된 관심이었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 아닌 정신임을 발견 현실을 진실하게 파헤쳐 참된 실존을 찾는 것이 지성인들의 문화 활동이었다. 인간을 투쟁 대상으로 저놈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잘못된 사상 위에 세워진 공산주의 이론은 70년이 못되어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못살고 어려운 현실이 나의 본질이 아닌 국가나 사회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현실 부정이 무식의 열매다. 이제는 개인의 정체성을 살리고 거짓이 아닌 본질적 질문을 하게 된 시대다. 성경은 죄가 모든 문제의 원인임을 가르친다. 지금 서구가 돌아서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아직도 구시대 공산혁명시대의 꿈에 몰입되어 만든 영화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런 면에서 황 감독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다음 영화가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그 좋은 머리로 교양과 서구 철학과 역사 공부 좀 하라.

다섯째 너무도 기독교와 서구 문명에 무식하고 부정직하다. 기독교는 소수 민족 못사는 나라 이스라엘에서 출발 거대 제국 로마를 점령한 정신적 우위의 신앙으로 무기 없이 제국을 이겼다. 타락하고 포악으로 약소민족을 약탈 거대 제국을 이룬 서구에 사랑과 겸손과 사랑과 순교 정신으로 이겼다. 전쟁으로 폐허된 가난한 나라를 누가 돕는가? 공산당인가? 사회주의인가? 자유와 인권을 위해 목숨 걸고 자기를 희생하며 목숨 바치는 기독교 싸움과 돈 몇 푼에 목숨 걸고 죽음의 피투성이 싸움꾼 현대인 께임을 즐기고자 하는 사회주의 부르죠아 소수 좌파 부자들의 취미생활 어느 것이 진리인가 답하라. 정말 싸이코 패스적 사고방식이다. 좀 정직했으면 좋겠다. 기독교 이상을 도용해 자기들이 인위적으로 만들겠다던 이상사회는 가난과 게으름과 무지와 혼란과 타락과 불안한 독재국가를 양산했다. 악이 진실이고 선하다는 영화 다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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