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을 도우신 하나님 (2020년 11월 1일 주일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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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을 도우신 하나님
2020년 11월 1일 주일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창세기 26:23-25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4).
지난주일 “하나님은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특히 자기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렇게 부르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3분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 이명길의 하나님 이렇게 부르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섭리 가운데 인도하셔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과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모든 것이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 개인 개인을 아시고 개인 개인에게 알 맞는 방법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 이름을 붙여 누구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인공인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 어머니 사라가 90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20마일이나 떨어진 지금의 예루살렘 모리아 산까지 데리고 가서 제물로 바치려고 그를 꽁꽁 묶어 단 위에 놓고 죽여 불사르려고 했습니다. 17,8세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제법 힘이 센 아들인데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상당히 성품이 순하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일을 당해서인지 이삭은 사실상 그렇게 장점이 별로 보이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이나 아버지처럼 극적인 장면들이 이야기 가운데 보이지 아니합니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감격적 삶의 모습은 없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굴곡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삭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믿음의 조상 반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삶을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럼 이삭의 삶은 어떤 특징이 있었고 이런 이삭과 함께 하신 이삭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셨습니까?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서 이삭을 도우신 하나님을 살펴보겠습니다.
1. 좋은 사람 만나게 합니다.
첫째 이삭의 하나님은 이삭에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복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아내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돕기 위하여 그보다 더 좋은 사람이 없을 너무 좋은 아내를 만나게 한 것입니다.
이삭 부부는 연애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이삭의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다음에 들은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왜 사라는 살아생전에 이삭을 장가보내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직접 아가씨를 구하러 간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갔는데 그가 그 여자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여자를 구하러 간 아브라함의 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여자에 대한 것을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 여자를 구하러 간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전혀 자기들의 성향이나 어떤 장점을 보고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게 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의 종이 여자를 볼 줄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를 보면 참 여자를 고를 때 진짜 주인 아브라함과 당사자 이삭에게 가장 필요한 여인을 구하였습니다. 건강하고 부지런하고 순결하고 친절하고 마음씨 곱고 짐승까지도 사랑하고 사람 차별하지 아니하고 종이라고 해도 융숭히 대접할 줄 알고 또 사람 말을 잘 믿고 그래서 참 여자를 고를 때 이런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겠구나 할 정도로 여자를 잘 보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가 마음에 그리는 여인을 위하여 기도하고 여자를 기다렸는데 그가 구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잘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는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 만나는 것은 따질 것이 못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부모를 통해 주실 때 하나님은 엄청난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를 지으셨으며 특히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선택하여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시고자 하시는 계획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음을 말씀합니다. 특히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서 원대한 뜻을 가지고 예수님을 지불하고 부르셨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발견하고 내가 어떤 환경이든 예수님을 알고 자기가 태어난 뜻을 알면 부모님께 감사할 줄 알게 되며 부모를 공경하고 사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환경을 비교하면서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만드셨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선 부모님을 통해서 내가 태어난 뜻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선택할 수 없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부모님은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리는 구원론을 통해 부모를 통해 나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빨리 발견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은 부모님을 도구로 쓰신 하나님과 부모님께 감사하고 은혜에 감격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배우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배우자를 정해 주었습니다. 본인의 뜻이 반영되는 문화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부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부는 본인에게는 의사 반영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가정을 사랑하시고 부부에게 큰 사명을 주셔서 자녀를 두어 가족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때문에 만남의 선택을 잘 해야 하지만 한 번 만나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해서 만났음을 고백하고 결혼합니다. 배우자를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셨음을 섭리를 통해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불신자와의 결혼이나 믿기 전에 불신자들끼리 만나서 한쪽만 예수 믿게 되어도 같이 함께 살면서 가정이 다 신자되는 것을 권면합니다. 혹시 살다보니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정해 주신 가정을 함부로 파괴하지 말도록 신앙으로 가정을 이끌어가도록 먼저 믿는 쪽에 요구합니다. 그래서 먼저 믿는 자가 자신의 신앙과 행실로 불신자 쪽을 설득하고 가정 모두 하나님을 믿도록 신자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본을 안 믿는 사람 편에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안 믿었으니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내의 신앙 이전에도 하나님의 섭리로 이미 부모를 통해 계획 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행되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친구를 만나 사귑니다. 친구가 참 중요합니다. 특히 어려서 친구는 나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친구를 만나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시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하나님 편에서 보지 않고 나의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고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삭에게는 너무도 귀한 분을 만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하고 특히 교회를 선택해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특히 교회는 제 2의 가정입니다. 내 가정은 내 뜻대로 아들딸을 낳고 기를 수는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나고 사귀고 함께 하는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는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말씀을 순종하는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교적 전통적 교회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그 교회가 보수적인 교회가 대체로 안전합니다. 말세가 되면 교회들도 이상해지기 때문에 성경을 따르고 기도 많이 하고 목사님이 성경 말씀을 잘 설교하고 비교적 성경대로 교회가 운영되는 교회이면 좋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하면서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여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겪어본 결론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불평을 했습니다. 왜 나는 좋은 장로님 한 분 만나지 않았는가? 이웃 교회 보니까 처음부터 아주 좋은 장로님 만나니 교회가 금방 부흥되고 그래서 불평이 많았습니다. 사실 이런 불평이 많을 때 저는 교회 부흥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지에 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은 저에게 좋은 만남을 주셨습니다. 좋은 아내를 주셨고 좋은 자식들을 주셨고 특히 중국에서 만난 목사님이 너무 좋았고 좋은 학생들 좋은 선생님들을 주셨고 그래서 그 곳에서도 하나님 사역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지금 미국에 와 있지만 학생들이 계속 오고 그 학교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금까지 계속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 만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삭에게는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만나게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리브가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신앙 있으면 신앙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내가 친절하면 친절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내가 마음이 넓으면 마음 넓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 자연적으로 그런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십니다.
2. 신앙적 양보를 도우십니다.
이삭을 도우신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이삭의 양보하는 마음을 지켜주시고 도와주셨음을 봅니다.
오늘 봉독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본문을 보면 블레셋 아비멜렉 왕국 그랄 지역에 사는 이삭이 받는 고통이 컸음을 보여줍니다. 첫 흉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랄 지방으로 갔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는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에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에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2-5).
이 말에 순종하며 흉년에 그랄 지방에 살던 이삭은 아버지가 겪은 어려움을 같이 겪습니다. 그 첫째가 미인이었던 리브가를 빼앗길 번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이라고 속였는데 그만 포옹한 것이 들통 나 왕에게 거짓이 들어났습니다. 미인인 부인을 데리고 살면 이렇게 가끔 포옹을 해야 지킬 수 있습니다. 왕이 백성들에게 이삭의 부인을 건드리지 말도록 명령을 내리게 합니다. 포옹 잘 하면 왕도 못 건드립니다. 부부 사랑이 외도를 막고 이혼을 막고 부부에게 접근하는 나쁜 사람들을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막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우물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팠던 우물들을 찾아 우물을 파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배나 얻게 복을 주셨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흉년에 피난 와서 사는 땅에서 농사가 잘 되어 거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흙으로 메웠더라.” (15) 남의 땅에 가서 잘 살게 되면 본토 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받기 마련입니다. 이사 온 놈이 우리보다 잘 살아 안 되겠다. 그래서 우물을 메우고 이 곳을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이니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날 골짜기에 가서 거기 거하며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서 살았습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팔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18)
그런데 그랄 사람들 목자가 와서 그 우물을 자기들의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목자들이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우물을 에섹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또 와서 자기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 우물을 싯나라 불렀습니다. 두 이름 다 다투다 대적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다시 옮겨 가 팠습니다. 그랬더니 다투지 아니해서 르호봇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장소가 넓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남의 땅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이삭이기는 하지만 늘 빼앗기고 파면 또 다른 곳으로 가야하고 남의 나라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지 보여줍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과 마찰은 있었지만 피가 나도록 싸우지 않고 양보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투지 않는 지역이 생길 때까지 바보같이 빼앗기고 또 팠습니다. 중동 지방에서 우물을 파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사막지대에게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물줄기를 발견할 수 없고 또 깊이 파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우물은 정말 귀하고 값진 것이며 생명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우물을 빼앗기고 빼앗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지기만 하고 빼앗기는 삶을 살았으니 바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양보를 하면서 수 없이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우물을 파서 살았지만 결국 옮기고 또 옮기고 하면서 브엘세바까지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살던 지역으로 온 것입니다. 거기서 아버지가 쌓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합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4)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것이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가장 예배를 잘 드리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곳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섬기고 복을 주실 그 곳 갈 때까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삭을 하나님은 그렇게 도왔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내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그 지역까지 빨리 갈 수 있으면 가야 합니다. 그것이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도 신앙적 측면에서 생각해야 복 받습니다.
3. 함께 하심을 나타내게 합니다.
이상과 같은 이삭의 삶을 통해서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와서 살 때 아비멕렉이 친구 아숫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 브엘세바까자 와 이삭을 방문했습니다. 이삭은 다시 겁이 났습니다. 또 침공하는 것이 아닌가? 브엘세바는 그들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8-29)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과 함께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쓰시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시기 위하여 무척 노력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오실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거기 계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사시기 위하여 다윗 왕국에서 성전을 짓게 하시고 성전에 머무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이 사실 목적으로 성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처럼 사실은 복된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천만금을 준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 28:20).
이삭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보고 화친하러 온 것입니다. 왕이 친히 한 개인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을 누가 해칠 수 있습니까? 강한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는데 누가 나를 건드릴 수 있습니까?
아이들이 놀다가 힘센 놈이 위협합니다. 너 가만 안 둘 것이야 하며 놀리고 나쁜 짓을 하라고 합니다. 시키는 대로 하다가 갑자기 대듭니다. 큰소리칩니다. 갑자기 태도가 달라집니다. 보니 저 쪽에 강한 아버지가 오시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힘이 생겨서 상대방이 아무리 쌔고 장사라 할지라도 용기가 생겨서 큰 소리 칩니다. 그렇습니다. 강한 자가 함께 하니까 힘이 생기는 것과 같이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보고 느끼는 사람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믿고 살면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남을 이기는 길입니다. 나를 해친다고 내 잔 머리 굴러서 그를 이기려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를 살펴 순종하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을 마귀도 사람들도 두려워합니다.
結 論
이삭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욕심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양보함으로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를 고향으로 보내서 예배하는 곳 아버지의 신앙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살도록 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와서 개인에게 화친계약을 맺으러 와서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며 조약을 맺어 살았습니다. 이삭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정말 자기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이삭의 삶의 특징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삶을 가장 큰 행복으로 믿을 때 사람도 건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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