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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 꿈 (2020년 11월 8일 주일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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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3,064회 작성일 20-11-2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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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의 꿈


2020년 11월 8일 주일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창세기 28:10-2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11). 


     오늘부터는 야곱의 생애와 사상을 공부하면서 야곱을 기르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 나누겠습니다. 야곱은 제 인생을 바꾼 인물이며 야곱을 기르신 하나님은 저의 신앙과 철학과 삶의 지표를 세워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의 다른 말씀도 다 중요하지만 저의 인생을 바꾼 야곱의 말씀은 제가 가장 감동 받고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창세기 28장을 특별히 좋아하고 저의 이전 교회가 벧엘 장로교회입니다. 저의 학교 이름도 보털리인유에슈에유엔(保特利音樂學院)입니다. 벧엘 음악학원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인터넷이 활용되면 저의 성경학원 이름도 벧엘 신학원이라 부를 것입니다. 왜냐면 오늘 말씀드릴 야곱의 꿈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꿈이며 또한 그 은혜를 받은 제가 꿈꾸는 세상이며 야곱이 살았던 인생이 바로 저의 이상이며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야곱이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후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버지는 늙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급히 야곱을 불러서 양을 잡아서 남편 입맛을 잘 아는 아내 리브가가 아들 야곱의 도움으로 급히 요리를 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고기를 알기 때문에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 틈을 이용 급하게 음식을 만들고 이삭이 몰라보게 야곱은 염소 털로 팔을 둘렀습니다. 아버지가 만져보고 까슬까슬한 털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어떻게 거짓말을 할 것인가를 논의했습니다. 조금 의심을 했지만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벌써 사냥을 해서 만든 것으로 알고 야곱에게 에서에게 줄 축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돌아와 이 사실을 안 에서는 분노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도 자기를 속였던 야곱을 속으로는 분노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아내 리브가의 말을 기억했을 것이고 자기도 꿈 이야기를 알기 때문에 그가 둘째에게 장자의 축복을 한 것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의 공작이 성공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원래 뜻인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의 분노는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어머니는 야곱을 피난시키기로 하고 외가 하란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별반 준비 없이 급히 떠났기 때문에 아마 여비도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잘 곳이 마땅하지 않아 길가에서 돌베개를 배고 잤습니다. 산짐승이 위험합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이 아니라 벧엘은 남쪽 사막 지대와는 다릅니다. 사나운 짐승도 나쁜 사람들도 무섭습니다. 그런 야곱이 길거리 잠을 잤습니다. 그날 밤 그는 꿈을 꾼 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 꿈은 왜 그리 중요하고 야곱 생애에 아니 이스라엘 역사에 그리 중요한 꿈이었을까요?

1. 은혜 성취의 꿈

    이 꿈에 나타나는 사닥다리는 오늘 우리들이 집이나 건축시 쓰는 사다리(Ladder)가 아닙니다. 제가 배운 구약학 Robertson교수는 타워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과거 바벨탑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바벨탑은 인간들이 한 도시를 이루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하서 꼭대기가 하늘을 닿도록 탑을 쌓았습니다. 사닥리 같은 계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3은 삼각형 모양으로 높게 쌓아 나사형으로 뱅뱅 돌면서 올라가는 그런 탑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벨탑은 인간이 노아 홍수를 기억 홍수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다시 와도 하늘을 닿는 탑을 만들어 올라가 피할 수 있도록 고안 인간이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이길 수 있다는 인간 만능주의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이겨 자신들의 영광을 나타내겠다고 하는 발상입니다. 인간이 하늘 길을 열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바벨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노력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하늘 길을 열수도 없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탑과 같은 역할을 할 사람 예수님을 계획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천하에 누구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 할 수 있고 하늘 길을 여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지금 난을 피해 도망가는 야곱에게 이 꿈을 주셨을까요? 야곱의 인생관이 바로 바벨탑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이 삶의 철학은 한 마디로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자기가 바라는 것이면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생각해서 기회를 엿보아 반드시 성취하는 그런 타입니다. 인간 능력을 믿는 인간 낙관론입니다. 그래서 장자권을 빼앗았고 무엇이든 어려움이 닥치면 낙담하지 않고 길을 뚫고 나가는 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생철학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일단 좋아합니다. 왜냐면 제가 그런 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무엇이나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만날 때 누구보다 제 자신에게 좌절하고 실망합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투표도 그렇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지난번에는 떨어진 힐러리를 찍었고 이번에는 지금 될지 안 될지 모르는 트럼프를 찍었습니다. 제가 찍는 사람은 꼭 안 됩니다. 오른쪽으로 선을 가면 그 길이 막히고 왼쪽으로 가면 꼭 그 길이 차가 밀립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을 잘 압니다. 야곱이 부지런하고 무슨 꾀를 써서라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인생을 살지만 인생은 자신만만한 자기 능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꿈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은혜로 하늘을 닿는 것이지 네가 바벨탑을 쌓아서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하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인생철학을 깨닫기 원합니다. 

    저도 공부할 때 수학, 영어, 국어 점수만은 꼭 반에서 1등을 해야만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다 아는 문제를 잘 못 풀어 점수가 2등이 되면 변소에 들어가 내 머리를 한 없이 때리며 후회하고 다음은 꼭 일등을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제가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것이 성취되지 못하면 한 없이 자책하며 절망에 빠지고 슬픔에 빠지고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는 열등의식으로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던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되는 일보다 더 많은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안 되던 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제 인생을 인도하는 것이지 모든 것이 제가 잘해서 노력해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야곱도 자기 노력으로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2. 성자 강림의 꿈

     요한복음 1::51 말씀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구가 예수님을 모세가 기록하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메시야임을 소개했습니다. 나다나엘을 보고 예수님은 이런 칭찬을 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 자기를 처음 만난 예수님이 자기를 본 일이 없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실 때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48). 예수님께서 대답합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더 깜짝 놀랄만한 말씀입니다. 이 놀라운 말씀을 듣고 친구의 말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고백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일을 말씀합니다. 네가 생각한 야곱의 사닥다리는 “인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보여주신 탑은 예수님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실 예수님 자신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하늘에 닿을 탑을 쌓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자를 보내셔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실 수 있는 하늘 길을 여시는 분임을 보여주시고 야곱의 사닥다리는 바로 인자 예수님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 길을 여는 것이지 인간이 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 타락 후에 사람들은 하늘에 닿을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건물을 높이 지어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세계 부자 국가들에서 봅니다. 현재 제일 높은 탑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고 둘째 셋째 넷째가 중국에 있습니다. 인본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알라를 믿지만 인간이 만든 종교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종교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본능을 위해서 알라신을 섬기면서 인간의 욕망을 이루려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만 유일하게 하나님을 주권자 통치자 창조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본주의가 기독교입니다. 

     사람들은 마천루만 짓는 것이 아니라 구원도 자기들의 노력으로 이루려 해서 인간의 행위를 제약하고 노력을 앞세웁니다. 불교도 인간의 고행을 구원조건 삼고 있으며 머슬림도 율법을 완성해야 구원받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기독교만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만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야곱이 알았을까요? 글쎄요. 아마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꿈 가운데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를 이렇게 약속으로 말씀합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따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13-15)

   두려움에 형을 피하여 가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야곱은 너의 후손을 별 떼와 같이 많게 하리니 두려워 말라는 약속이며 지금은 홈레스가 되어야 길바닥에 잠을 자지만 이 땅이 다 너의 것이며 너의 후손의 땅이 될 것이니 세계 모든 민족이 너로 복을 받게 될 것이며 내가 너를 이 땅에 돌아오기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는 네 노력으로 인생을 성공하겠다 하지만 나는 너의 모든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룰 것이며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내 손바닥에 있어 내가 주관할 것이며 너는 소중한 사람이고 중요한 사람이며 너는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이고 너는 장차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소통의 길을 여실 메시야의 조상으로 이 막대한 역사의 주인공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 이 얼마나 힘이 되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열어주시는 말씀입니까? 아마 자신이 이 정도 소중한 사람인줄 처음 알았을 것입니다. 저도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나게 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니 살맛이 나고 그래서 미국을 오게 되고 교회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고 지금도 이 산골짜기에 교회를 세워 새 이스라엘 운동을 시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제게 깨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 만유 소통의 꿈

     야곱은 꿈에 탑에 나 있는 계단 같은 길에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천사를 때로는 사자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소식을 땅에 전하러 내려오기 때문에 메씬저(Messenger)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인간과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길을 여시는 목적이 인간과의 소통임을 보여줍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과 소통이 필요합니까? 사실상 우리 인간끼리의 삶 속에서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행복합니다. 소통이 없으면 답답하고 고독하고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활한 여우와는 살아도 곰하고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곰은 든든하고 묵직하지만 살살거리는 여우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소통이 없는 삶은 참 답답합니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소통에 익숙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상한 남편들을 좋아합니다. 옆에서 소통하고 말해주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남편을 선호합니다. 남편은 비교적 듣는 편이지만 그래도 자상하게 반응해야 좋은 부부가 되고 좋은 부모가 됩니다. 소통은 인간됨을 증명해줍니다. 

     자식하고도 소통이 끊어지면 답답합니다. 대통령과 국민이 소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문제인이 무엇을 꿈꾸고 어디로 국가를 끌고 갈 것인지 소통이 없으니 참 답답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언어를 주신 것은 소통을 위한 것입니다. 원래 언어는 삼위 하나님의 소통방법이었습니다. 그 소통의 매개체 말을 인간에게 주시고 또 말씀인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뜻을 알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온전한 소통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설파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며 본연의 인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소통하기 전에는 진정한 만족도 행복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 소통할 때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인간끼리도 서로 교통하고 소통하는 부부가 행복한 것처럼 인생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소통할 때 가장 만족감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독하고 답답하고 힘듭니다. 인생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뽑으시고 이삭과 야곱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장차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 우리와 소통하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 1, 2 장에서 하나님께서 부부로 가정을 만드신 것은 부부를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주시고 인간 끼리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까지도 정복하고 잘 다스려서 하나님과 만물을 하나로 만드는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부부를 만들고 가정을 만들고 소통하게 하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죄로 인해 소통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스럽고 소망이 없고 방향을 상실했으며 그래서 인간은 고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가장 돈 많이 들어가는 분야가 무엇인지 압니까? 소통 분야입니다. 스마트 폰이 있습니다. 인터넷이 있습니다. 페이스 북을 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얼굴을 보고 통화하고 이야기 하고 트위트를 날리고 저도 인터넷을 이용 설교와 칼럼과 성경공부로 서로 소통하는 길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스마트 하나가 천불을 넘어도 그것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아무리 멀리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타트 폰으로 얼굴을 보고 말하며 소식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소통은 그만큼 인생을 풍요하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아야 인생이 평안하다고 했는데 하나님과 어떻게 스마트폰을 할 수 있을까요? 그분은 영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야 하는데 사실 지금은 예수님도 하늘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스마트 폰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기도이고 예배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뜻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여기 계심을 알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인생이 고독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듣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목사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주일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예배 형식을 보면 교인과 하나님과의 대화 형식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고 우리를 묶어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은 말씀을 목사님을 통해서 듣게 하시고 하늘의 축복을 목사의 축도로서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하나님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며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기쁨이 다르고 즐거움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소통을 이루며 사는 사람은 세상이 어려워도 두려움이 없고 걱정 근심에서 해방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실감하게 됩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행복한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함께 살며 또한 하나님과 좋은 관계로 소통하고 살 때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結    論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자율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18세기 독일 관념철학은 하나님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것이 무신론적 관념 철학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지배한다고 인간의 지위를 한층 낮췄습니다. 또한 인간은 머리가 발달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 지적 능력이 있는 존재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보고 모든 것을 인간 중심에서 생각하고 인간 낙관주의를 선호합니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위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인간이 하나님의 법에 구속받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가장 합리점인 체제가 막스주의 공산주의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삶을 위해 공산주의가 소유를 강제로 똑같이 나누어줄 수 있어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막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악과 욕심이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평등을 위해 가진 자 소유를 빼앗고 공평하게 나누는 과정에서 빼앗고 나누어 줄 힘 있는 독재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독재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빼앗고 나누는 과정에서 온갖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공산주의 나라는 자유를 가지고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강한 정부가 인간을 핍박하고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사회가 위축되고 사람들이 답답하여 살 수 없는 사회가 됩니다. 하나님 없애버리고 인간은 고독하게 되고 하나님과 소통이 사라진 인생들의 싸움만 삶의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맛을 잃습니다. 그것이 공산주의 실패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적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바벨탑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고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결코 행복이 아닌데도 그렇게 살고 싶어 지금도 좌파들이 극단의 이기적 자유를 누리는 그런 사회를 꿈꾸며 물건을 평등하게 나눠가지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미국을 그런 나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불쌍한 생각까지 듭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신론자들의 권력욕에 우리들 심령은 썩어 들어갑니다. 지금 어느 때인데 미국같이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선거 부정을 하고 있는가? 미국이 세계에 가장 추한 나라꼴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인간들에게 말합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한계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얻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도 시장 경제도 자본주의 사회도 복지 국가도 다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인간의 꿈이 하나님 은혜 없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 분을 통해서 만유를 하나로 묶어 창조주 하나님과 소통하는 한 몸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결혼하게 하고 자식을 주고 교회를 주셔서 인간끼리 사랑으로 소통하여 하나 되고 하나님과 만물까지도 서로 소통하여 하나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구원 받아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하나 되고 이웃을 사랑하여 하나 되는 삶을 통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과 만족은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과 신앙으로 돌아가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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