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정신 (2020년 11월 22일 추수감사절 예배 설교) > 설교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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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정신 (2020년 11월 22일 추수감사절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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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3,096회 작성일 20-11-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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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의 유래(由來)와 정신(精神)


2020년 11월 8일 추수감사절 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데살로니까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 말씀은 좀 자세하게 보아야 그 뜻을 선명히 알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십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일이나 보통 일이나 특별한 일이나 모든 일이나 그런 뜻입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감사할 수 있는 일이나 감사할 수 없는 일이나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을 때는 자연적으로 감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감사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는 감사가 사라집니다.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일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 마음에 불만이 생기고 그것이 사람일 경우 그 사람에게 대해 불만과 원망이 생기고 섭섭한 마음이나 심하면 한이 맺히고 심하면 복수감이 불타게 됩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사이가 나빠지고 결국은 다툼이 자주 일어나고 다툼은 사이를 더 벌리며 복수할 마음으로 발전합니다. 갈수록 내 마음도 더 괴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없는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경우에 감사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바로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만은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요셉 이야기에서 이런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기를 노예로 팔아 아까운 청춘을 잃어버리고 너무도 고통으로 점철되게 만든 그 형들이 지금 애굽의 총리가 된 자기에게 붙잡혀왔습니다. 원래 곡식을 사러 왔지만 요셉은 자기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게 하기 위하여 저들을 도둑으로 몰아 베냐민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떨고 있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형들의 악한 행동을 통해서 우리 식구를 살리려고 나를 먼저 보내셨다고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우리는 하나님이 악한 일을 쓰셔서 결과를 선하게 역사를 만드시는 철칙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감사부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괴롭지만 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어떤 좋은 일을 이루려고 하시는 것일거야 하면 마음이 풀리고 원망이 점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인생사 모든 것은 꼭 악이 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악이 기회가 되기도 하고 악이 선의 종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밖에는 사실상 사탄의 세상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도 좋은 결과로 끝날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 안에 있어야 선을 이루게 됩니다. 특히 모든 일은 감사함으로 내가 예수 안에서 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에 감사할 수 없는 일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안에서 해결 보다 더 주님과 관계를 깊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 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일입니다. 나쁜 일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그 나쁜 일을 통해서 더 큰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절을 지키고 감사는 예수 믿는 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생활방식입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바로 추수감사절은 이런 역경 속에서도 예수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감사하던 청교도들이 지켰던 감사절을 우리가 지키는 것입니다.

1. 청교도 순례자(Puritan Pilgrims)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지금의 마사추세스 주 풀리머스에 도착한 영국청교도 분리주의자(영어 순례자(Pilgrims)들이 1621년 11월 중 3일 동안 축제로 하나님께 감사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추수감사절 유래를 알기 위해 이를 시작한 순례자들은 누구며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 연방 휴일로 정해졌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Pilgrims는 1605년경 영국 남부에서 존 로빈슨, 리차드 클리프톤 등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청교도 분리주의자들로 교회는 자의적 민주적 공동체이지 결코 국가적 공동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 영국교회는 성경적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예배할 수 없다며 성공회를 이탈 분리 출발했습니다. 헨리 8세의 사적인 이혼 문제로 케돌릭에서 분리한 성공회는 개혁 바람에 바람 잘 날 없었습니다. 칼빈의 영향을 받은 죤 녹스는 이미 스코틀랜드 교회를 개혁 장로교를 세웠고 헨리 8세 사망 후 에드와드 왕이 등극 청교도 개혁이 잠시 이루어졌으나 단명하여 죽음으로, 후임 메리여왕의 케롤릭으로 회귀 엄청난 피를 흘렸습니다. 그의 별명은 피의 마리아(Bloody Mary)입니다. 스페인 왕과 결혼했으나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아들이 없이 5년만에 죽자 헨리 8세의 2째 부인 엔볼린의 딸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고 케돌릭도 아니고 신교도 아닌 영국 국교중심의 국가 교회(성공회) 연합정책으로 국가 갈등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오랜 정치적 갈등을 마무리한 1559년의 교회일치정책(Uniformity)을 청교도 분리주의자 순례자들은 받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에 분리주의 청교도들은 교회를 이탈 따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리론자들을 영국 정부가 가만히 둘 수 없었습니다. 1593년부터는 강한 핍박이 시작되었고 지하로 숨는 교회 불참자들에게 벌금을 매기기 시작하자 1593년부터는 로버트 브라운 등을 옥에 보내고 1593년 핸리 바로우 등이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지도자 브라운은 더 이상 지하교회가 불가능함을 인식 추종자들을 데리고 화란 미들버그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들이 자리 잡자 1607년경 숨어 지내던 Pilgrims들이 화란의 라이든(Lyden)으로 다수 이주 합류합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화란에서 정착이 쉽지 않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사형을 당한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아들 제임스가 영국과 스코틀란드 대영제국의 왕이 되어 다소 핍박이 누그러질 것을 예상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모색합니다. 그런데 영국과 스코틀란드 두 나라의 왕이 된 제임스 왕의 정치적 상황이 녹녹치 않았습니다. 보다 영국 국교 중심의 결속을 다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청교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미 1607년 영국인이 처음 도착한 버지니아를 생각했으나 철회했습니다. 그래서 뉴욕 주 허드슨 강 주변에 이민 간 화란 이주민들의 정착지로 결정 1617년 지원자를 모집 모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원주민 인디언들이 위협적이었지만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1619년 6월 영국 정부 허락을 받아 드디어 1620년7월 60톤급의 Speedwell (1577년 만듬)호를 타고 라이든을 출발 영국의 햄프셔에 도착 더 큰 배 Mayflower와 함께 8월15일 출발하기로 합니다. 110명 중 102명을 선발 승선자와 항해사 등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타고 온 배가 물이 새어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되자  Mayflower호만을 이용하기로 하고 120명중 102명(남73, 여 29명)을 선정 탑승 1620년 9월16일 영국을 출발합니다. 이들 중 라이든에서 온 분은 약 절반 정도였으나 성인 순례자들은 28명에 불과했습니다. 처음 항해는 순조로웠으나 심한 풍랑으로 배 축이 부러지는 어려움을 겪으며 65일만의 항해로 원래 목적지 뉴욕 쪽으로 가지 못하고 지금 마사추세츠 주 Cape Code에 11월12일 도착합니다. 청교도는 소수였지만 지도자 윌리암 부르스터의 지도하에 시편 100편으로 감사기도하며 풍랑을 이기며 항해했습니다. 이미 선상에서 자치 헌장을 만들어 41명의 어른들이 싸인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최초의 Mayflower Compact(자치법(헌법)입니다.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 법에 따라 공동체를 운영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곳에 이미 살고 있는 인디안들 동태를 살피기 위해 2주간 정찰을 마친 후 드디어 12월16(월요)일에 지금의 플리머스항에 도착한 것이다. 도착한 후 지사를 뽑아 민주주의 정치를 처음 시작한 것입니다.

  2. 추수감사절은 어떻게 생겼는가?

     앞에서 미국 추수감사절을 시작한 청교도 분리주의자 순례자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추운 겨울의 풍랑을 견디며 승객 1명과 선원1명을 잃고 100명이 지금의 Cape Code에 겨우 도착한 것이 11월12일이었습니다. 육지에 도착했지만 바로 하선할 수 없었습니다. 인디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Cape Code 주변 탐색 중 백인의 해골을 발견하고는 더 큰 두려움에 쌓였습니다.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지금의 플리머스 항에 도착한 것은 12월16일 월요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청교도의 첫 발자국이 남겨진 돌을 플리머스에서는 기념물로 집을 지어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월요일이어서 그들은 2개월이 넘게 빨래를 못한 모든 옷을 인근의 강물에서 세탁하여 New England에서는 월요일이 빨래의 날로 지켜지는 풍속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겨울에 도착한 그들은 우선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하루라도 쉴  수가 없었다. 그해 겨울 날씨는 혹독하게 추웠으며 이미 그 지역 인디안들을 강타한 전염병으로 땅이 비어있던 곳이었습니다. 전염병 또한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결국 살아남은 100명이 그해 겨울 절반인 50명이 죽고 50명이 남았습니다. 추운 겨울 신천지 미국 땅을 밟았으나 절반이 아까운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거주지로 정한 플리머스 지역은 Patuxet Indian의 땅이었는데 질병으로 대부분의 종족이 소멸되었습니다. 이들 중 질병에서 살아남은 Squanto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유럽에 노예로 팔려갔다 돌아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청년이었다. 그는 순례자들에게 고기 잡는 법과 옥수수를 기르는 법 그리고 그곳 인디안들에게 통역관의 역할로 이곳 인디언들과 소통하게 도왔습니다. 결국 아깝게 이도 역시 질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이 지역의 추장 Massasoit이 매우 호의적이어서 그의 도움으로 부족한 식량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지금 마사추세츠 주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런 도움으로 그들은 농사를 지어서 1621년 첫 추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3일 동안 첫 감사 축제를 거행한 것입니다. 첫 감사절은 9월 21일부터란 설도 있고 11월11일이란 설도 있어 아직도 확정된 결론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쓴 달력은 지금의 우리의 달력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후 연구가들이 11월이란 설이 많지만 아직 확실한 날짜는 모릅니다. 기록에 100명 중 남은 50명의 순례자들과 90명의 인디언들이 함께 추수감사 축제에 참여했다. 살아남은 4명의 여자 순례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인디안들이 협력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를 3일 동안 축제로 지켰다. 이들의 정착 역사를 기록한 Whiilam Bradford 지사는 인디안들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고 채소를 가꾸어서 그해 여름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지냈다고 기록했습니다. 특히 주위에는 야생 터키가 많아 이를 사냥 고기를 먹음으로 터키는 첫 정착민들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동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축제에 터키를 잡아 함께 즐기는 풍속을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초기 추수감사절입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추수감사 비슷한 명절들이 있는데 미국 추수 감사절은 고난 중에 감사한 청교도들의 감사일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수감사절을 국가적 명절로 시작한 분은 초대 대통령 Geroge Washington이었습니다. 그는 독립 후 1789년 국가적 기념일로 선포하고 의회의 인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국 헌법의 기초자이지만 이신론자이던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이를 폐지하였습니다. 아마 그의 정교 분리 원칙에 반한다고 생각한 까닭이라고 봅니다.

  3대 제퍼슨 대통령에 의해 폐지되어 국가적으로 지키지 못한 추수감사절을 다시 부활시킨 분은 16대 대통령 Abraham Lincoln이었습니다. 그는 남북 전쟁 중인 1863년 추수감사절을 국가 기념일로 “이미 하늘에 계실 신앙의 선배들에게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국가적 기념일”로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지키자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1939년에 이르러 자유주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해 11월은 목요일이 5번 있어서 전통적인 감사절 마지막 목요일을 4번째 목요일로 바꾸고 이후에도 마지막 목요일이 아닌 끝에서 2번째 목요일을 감사주일로 정함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1주 앞당긴 것은 성탄절까지 기간을 길게 하여 상점들의 장사 기간을 늘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까지 연중 최고의 장사가 되도록 하는 풍습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수 감사절부터 성탄절 장식이 시작되고 상품 구매 촉구를 위한 행사가 시작되니 감사와 거룩한 성탄절 의미가 희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절과 성탄절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아니라 선물을 사고 연말 파티를 하고 모여 땐스하고 즐기는 계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후 1942년 10월 6일 미 의회에서 11월 4째 목요일로 확정 국경일로 선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추수 감사절 다음 금요일을 Black Friday로 선포하고 성탄절까지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온갖 행사와 함께 상점들이 1년 매출의 상당량을 이 때 팔아 경제적 이익을 남기는 절기가 된 것입니다.

     교회도 세속에 따라 이런 풍속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 시기에 각종 사회단체들이 기부를 강조하고 헌금 모으기를 시작합니다. 길거리 구세군의 자선남비 활동이나 각 봉사 기관에서 온갖 명목으로 헌금을 요구하는 행사를 벌입니다. 아마 각자 집에 수 없는 전화가 오고 기부금을 강요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요사이는 사이비 단체들이 속출 거짓 전화 모금을 하고 있어서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군인, 경찰, 소방대, 불우 이웃, 고아들 각종 사회적으로 불우한 이웃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빙자하여 헌금을 강조하는 전화가 상당 수 거짓으로 돈을 모으는 범죄가 심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세상은 자꾸만 악해집니다. 원래 명절의 근본  정신이나 처음 가졌던 선배들의 신앙은 무의미해지고 희미해집니다. 온갖 상업용 가짜들이 이 감사 계절 성탄 계절을 틈타 순진한 민간인이나 특히 노인들 이민자 노인들을 속여 헌금을 강탈하는 일들이 감사의 계절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앞날 또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도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교회가 정신 차리지 못하면 사회가 썩고 혼란을 틈타 온갖 악령들이 심판을 촉진합니다. 이런 현실을 바로 깨닫고 감사절과 성탄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結   論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은 계속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대통령들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소위 정치 교정(Politica Correct) 정책으로 성탄절이란 말을 못쓰게 하고 Season’s Greeting이라고 카드에 인쇄합니다. 정교 분리 원칙이 종교 자유를 제한하고 침범합니다. 그러나 이번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 당시 원래 청교도 정신으로 시작한 독립선언문을 헌법 정신으로 명시하고 원래로 돌아가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미국이 자꾸만 타락해 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트럼프를 좌파 언론이나 민주당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이에 생명 걸고 달려들어 부정선거를 통해서라도 정권 잡고자 엄청난 부정을 저질러 마치 바이든이 당선인 것처럼 똘똘 뭉쳐 뭉게는 언론들의 행패는 도가 지나칩니다. 저들은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여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판단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언론으로 타락했습니다. 국민이 개, 돼지가 아닌데 저들은 그리 생각합니다. 언론이 권력 노름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 부정선거는 세기적 부정선거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쇼 정치꾼들의 행패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당황스럽습니다. 소수 민족으로 미국을 천국으로 알고 이민 온 우리도 당황합니다. 미국의 좌파 언론 매체들의 수준이 이 정도이며 미국의 지성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민얼굴이 이렇게 추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미국이 불행한 미래를 보게 하는 엄청난 표 도둑질입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번에 이런 일들이 터지게 해 오히려 발본색원하고 미국의 장래가 밝아질 수 있는 희망이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과 좌파의 공격에 어려움 당하는 트럼프가 재집권하여 종교의 자유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당선되면 학교가 쇄신될 수 있게 될 것이며 보다 종교의 자유가 확대될 것이며 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크리스마스 이름을 찾고 감사의 계절의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교 분리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 동안 민주당의 좌파 독제가 미국인의 신앙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젊은이들을 무신론자 좌파로 만들고 인종 차별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역사를 투쟁 역사로 바꾸고 심지어 흑인이 들어온 1619년부터 미국 역사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역사를 투쟁 역사로 조작한다는 것입니다. 망상입니다. 어떻게 현재가 과거를 만들 수 있습니까? 역사적 괴물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역사는 사실로 배우면서 오늘의 현실을 보다 밝게 적용하는 것은 가하지만 역사를 꾸미는 것은 인간의 지나친 농간입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역사의 해석은 바뀔 수 있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재편성은 역사를 이용 좌파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기극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교회의 역사이며 협력의 역사이며 천부적 자유권을 지킨 역사입니다. 너무나 잘못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 전쟁의 악령이 다시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수치가 드러나고 자유주의자들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 이번 부정선거입니다. 이번 선거가 자유의 승리가 되어 잘못 가는 역사를 되돌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미국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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