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셋의 후손들 (2020년 7월 19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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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셋의 後孫들
2020년 7월 19일 주일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창세기 4:16-26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칠십칠 배아리로라(24).
요사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 때문에 한국 사회가 참 떠들썩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정치 지도자요 한국 사회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한 사람 특히 성희롱을 변호하여 출세 길에 오른 사람, 그 동안 여성 단체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 이렇게 뒤에서는 딴 짓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이중적일 수 있는가를 놓고 한탄하는 분도 있고 의아해 하는 분도 있고 인간이 이렇게 두 얼굴을 가질 수 있는가에 놀라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여러 분석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헛 다리를 짚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름대로의 배운 학문이나 특히 심리학을 기초하여 분석하는 분들을 보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성경적 입장에서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나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들은 죄성만 남기 때문에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 맛을 보게 되면 이중인격자가 아니라 삼중 사중 인격자가 충분하게 될 수 있고 특히 자기는 성희롱 피해자를 변호하면서 돈을 벌면서 자기는 국가 세금으로 월급 주는 비서들을 자기 사무실 침심에 드나들게 하고 그들을 기쁨조로 부릴 수 있는 인물이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며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거룩한 말씀이니 전혀 죄스러운 이야기를 피하고 거룩하고 우리 보통 인간들이 알 수 없는 그런 책이 아니라 성경에도 다윗의 간음 이야기도 나오고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라멕 이야기도 나오고 형제를 죽인 가인이야기도 나오고 사위를 죽이려 하는 사울 이야기도 나오고 자기는 이스라엘 역사를 바꿀만큼 훌륭한 선지자였지만 자식 농사는 그릇친 사무엘 이야기도 나옵니다. 인간의 죄성을 그대로 말씀하면서 이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인생을 바꾸고 어떻게 살아갔는가를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칼럼리스트들이 박원순 같은 사람을 마초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마초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성경 본문에 보니 인류 최초의 마초는 아마도 라멕이라고 봅니다. 이 라멕을 살펴보면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아담 부부를 창조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 인간은 얼마나 더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면서 무신론 인본주의자들의 두 얼굴을 보며 이들의 사악한 접근을 이해하고 이들이 무너뜨리고자 하는 진리를 수호하고 교회를 지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말씀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1. 夫婦 意義 破壞
가인은 사탄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두 아들이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충고하고 범죄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가인은 그 충고를 듣고 더 화가 나서 살인을 했습니다. 가인이 승리한 것 같지만 범죄한 가인의 후손들은 이상하게도 더 범죄하고 죄는 갈수록 더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인의 후손 가운데 라멕이란 사람은 아내를 둘을 두었습니다. 일부일처제가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이들을 결혼시키시면서 부부가 한 몸 되라고 하셨습니다. 한 몸 되라는 말은 일부일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머슬림같이 일부4처를 두고 하나 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일부일처로서 한 몸 되어 하나님께서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일을 하라고 부부를 만들어주고 서로 협력하고 특히 하와에게 도우라는 정말로 아름다운 아내의 직분을 주었는데 이를 무너뜨리고 일부이처를 두게 됩니다. 가정의 근본을 상실하고 부부관계가 남성 위주가 되고 여성이 남자의 성노리개가 된 것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 부인들에게 자기가 살인한 것을 자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장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는 것이 부부간의 일인지를 찾아볼 수 없는 타락한 가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사탄의 후예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신앙이 무신론자들이나 신앙이 식어지고 부부의 사명을 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성적 타락이 문제가 되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본능에 사로 잡혀 자연적으로 그리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성적 쾌락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이나 서구 기독교 국가에 불고 있는 동성애나 퀴어 축제 열풍은 결혼이라는 축복된 틀을 파괴하고 성 자유를 부르짖으며 완전히 성적 쾌락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죄성의 가장 무서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창조의 뜻을 완전히 반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험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의 쾌락을 찾는 인간의 본능은 폭발력이 있습니다. 사실 동성애는 창세기 노아 때에 벌써 나타나는 오래된 죄악입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를 범한 것이 인류 최초의 동성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동성애를 가장 크게 벌했습니다. 함의 후손 가나안은 하나님이 그의 자손들 모두가 노예가 되는 징벌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소돔 고모라 멸망의 원인도 동성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나안 족속을 전멸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것도 그들의 성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성의 타락은 결국 자손을 죄악으로 물들게 하는 원인이 되며 하나님의 근본 뜻을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섭게 벌하는 것입니다.
지금 동성애자들 때문에 얼마나 무서운 징벌이 있습니까? 에이즈가 돌아서 동성애자들 때문에 지금도 동성애자들 가운데 에이즈 환자가 많은 것을 봅니다.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원인은 동성애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동성애를 아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있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1:26-27).
그런데 지금 미국에는 교회 목사가 동성애자가 있고 동성애 목사가 있으며 연합장로교회는 그런 동성애를 인정하고 있고 감리교도 금년 이 때문에 교단이 갈라진다고 합니다. 참으로 한탄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을 알기를 무엇으로 아는지 성경을 떠나서 교회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동성애 축제가 판을 치고 이것을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치고 동성애를 선택하는 것을 부모가 간섭하지 못하게 하고 이런 설교를 하는 사람을 고발해서 감옥에 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입을 틀어막는 법이 성 소수자 차별법이라는 것인데 목사들의 입을 틀어막고 기독교를 파괴하고자 하는 무신론 좌파 문화 막스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왔습니다.
동성애나 퀴어 축제는 하나님을 떠난 무신론 인본주의의 열매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원순은 서울 대에 들어가서 데모하다가 학교를 중단하고 단국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처음 대구 지방 검사로 발령 받았으나 6개월 만에 사퇴하고 변화사가 되어 성 희롱 사건을 변호 5년간 재판을 끌어오다 결국 승리함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는 해방 후 남로당 당수인 박헌영의 아들 승려 원경(본명 박병삼)과 함께 우리 민족 역사 연구소를 만들어 공산주의자 남로당 대표 박헌영 전집을 만들고 지금까지 좌파의 대부로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결혼관은 전혀 전통적 관념을 벗어난 쾌락의 하나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결혼관 부부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부부의 사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이 하나 되고 자연을 잘 다르려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는 일이 그래서 이 땅에 예수 통일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부부의 사명이고 우리 모두의 사명이고 하나님 백성의 사명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2. 人本主義 對稱文明
두 번째로 우리가 볼 것은 가인 후손들 가운데 문화 문명을 일으킨 최초의 사람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야발이라는 사람은 장막에 거하며 목축업을 하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들에 사는 짐승을 길러서 털을 깍아 옷을 만들어 입고 잡아서 고기를 먹는 목축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냥하는 노동을 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원래 아담 때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목축은 후에 야발을 통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아우 유발은 수금과 풍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만들고 악기를 만들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음악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고 특히 악기의 창시자가 된 것입니다. 음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셋째로 씰라의 아들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기구를 만들어 쓸 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구리 기술 즉 청동 시대를 열었고 쇠로 도구를 만들어 주는 철강 시대를 열고 특히 기술을 습득하여 이루 문명 사회를 이루는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불신자나 심지어 성경학자들도 여기 나오는 문화 문명의 시초를 참 잘한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더 나아가서 죄로 벌을 받은 것이 인류 문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전혀 성경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왜냐면 인간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시작 문화 문명을 일으켰다는 말은 맞지만 인간의 물질문명은 하나님 나라의 대칭 문화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모든 것이 이미 다 존재하고 더 이상 우리의 발명이나 발전이 필요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에덴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만든 대칭 문화일 뿐이지 결코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인류의 문화문명이 죄지은 인간에게 주어진 벌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시작한 것을 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잘 못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지금도 기술이 발달하고 첨단 과학이 발달하지만 이제 이들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대칭 문화가 하나님께서 노동하고 땀 흘리고 엉겅퀴가 나게 하는 진노를 극복하도록 하는 물질문명이 이제는 인간을 위협하고 사람이 기계의 노예가 될 날이 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공위성도 필요 없고 에이아이도 필요 없습니다. 컴퓨터도 필요 없고 구글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오시면 다 필요 없는 것들입니다. 물론 그 때까지 인간은 계속 계발하고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제 과학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에이아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영리하기 때문에 의사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잘 맞추기 때문에 의사한테 가지 않고 컴퓨터에 내 증상을 말하면 자동적으로 약 이름이 나오고 수술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가 다 알아서 착착 더 잘한다고 합니다.
자동차도 시동을 걸고 코스코에 가자 하고 말만 하면 운전을 자기가 알아서 해서 교통사고도 안 나게 코스코에 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에이아이가 사람보다 더 영리하고 능력이 많기 때문에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다스리고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무엇보다도 만든 기계가 모든 것을 다 하기 때문에 사람이 취직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벌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부자는 더욱 부자되고 가난한 자는 일할 곳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쟁 무기가 발전으로 인간이 한 번 잘못하면 전 세계가 단번에 멸망당하는 살상 무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실수로 하나만 터지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멸족을 당하는 살상 무기로 가득 차 있고 핵무기 경쟁으로 나라마다 가득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만든 하나님 나라를 문명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이렇게 발전시킨 인간 물질문명은 결국 인간 스스로를 파멸하고 인류를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노아 언약에서 창조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보존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과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노아 언약에서 말씀하겠습니다. 우리가 과학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반성경적 반인륜적 반신앙적이 되면 인류 문화 문명은 스스로 멸망으로 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3. 罪刑 自律主義 悲劇
라멕은 두 아내에게 자기는 상처로 인해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소년을 죽였다고 노래합니다. 소년이면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입니다. 힘이 약한 자가 상처를 주었으면 얼마나 다쳤겠습니까? 단지 기분이 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소년을 죽여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가치를 자기 기분보다 못하게 만든 장본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게 하나님께서 만든 것인데 라멕은 자기 기분이나 맞추는 장난질로 살인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은 생명의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습니까? 특별히 공산당과 같은 전체주의 권력자들이 사상이 다르다고 무참하게 학살하고 생명을 죽이고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지금 미국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왜 불랙 데모가 일어납니까? 경찰들의 생명 경시 풍조 때문입니다.
이런 생명 경시 풍조는 아보션에서 나타납니다. 딸이면 죽이고 아들이면 살려서 지금 중국은 장가 못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동네가 생겼습니다. 하나만 낳게 하니 모두 아들만 낳고 딸아이는 그냥 죽여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공산 사회가 잘 살 줄 알았는데 이제 인구 절벽이 생겨서 늙은이들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두 부부가 남편 부모 아내 부모 4사람의 노후를 책임지고 만일 할아버지까지 섬겨야 하면 양쪽에 4명씩 도합 12명을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자기 아이들 먹여살려야 하고 12명을 먹여살려야 노인들이 살 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만 낳기 운동이 이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이런 죄인입니다. 죄의 결과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성경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했습니다.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소수의 엘리트의 권력을 위한 시종으로 삼기 때문에 사실상 공산혁명은 노예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숙청하고 죽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공산 사회에서 인민재판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생명 경시 풍조의 극치입니다.
라멕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모습은 그의 말씀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불쌍히 여기사 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라멕은 가인에게 준 약속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가인에게는 7배이지만 라멕 자신에게는 77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 가고 죄로 가득 찬 라멕 자신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선포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이용하고 하나님을 자기 같은 죄인 타락한 인간이나 돕는 하인으로 취급합니까? 이것이 인본주의자들의 피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일반적 견해가 무엇이며 심지어 교회는 나가는 척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신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것입니까?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풀이하고 하나님을 자기 종처럼 자기 신변 보호나 해 줄 수 있는 경호실장 취급하는 미신 종교로 타락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경호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쓰시는 주권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종이지 하나님이 내 종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믿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주권신앙입니다. 인권주의가 아니라 신권주의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원리를 찾고 성경 원리대로 하면 됩니다. 목사가 정치하라는 말이 아니고 장로가 장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성경 원리를 모든 면에 적용하여 교육하고 정치하고 문화 창조를 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왜곡하지 말고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천지를 지으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살인자 일부이처를 둔 라멕을 77배나 갚아주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런 죄악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엄하십니다. 그래서 악을 참아 보시지 못합니다. 삼사대까지 악을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공의롭습니다. 그러나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무서운 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참으심과 인자하심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공의이십니다. 이시대의 라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結 論
지금 코로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견해로는 코로나는 하나님의 진노임에 틀림 없습니다.
오늘의 미국이나 영국이나 구라카 기독교 국가들의 행태를 볼 때 하나님을 떠난 인본주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마지막 사탄의 후손으로 믿는 자들을 해치고 교회를 말살하려고 듭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참으실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교회를 해치면 비극으로 끝납니다.
교회를 트랙터로 부수고 핍박하는 시진핑에게 지금 중국의 천재지변은 경고합니다. 지금 산샤 땜이 무너지게 비가 오고 있고 때 아닌 메뚜기 때가 농작물을 해치고 있고 곳곳에 산 사태 지진이 일어나고 있으며 코로나가 중국 우한에서 터졌습니다. 우한은 공산당이 기독교를 없애는 모범 도시로서 그 동안 교회 건물을 파괴한 지역입니다. 교회 건물을 손 댄 사람은 코로나로 죽었다고 합니다. 박원순도 사랑 제일 교회 건물을 부셨습니다. 그리고 성희롱이 터지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대통령 꿈을 꾸면서 그 동안 엄청나게 준비한 사람인데 결국 한줌의 재로 변했습니다.
지금 미국의 문화 막시즘을 인식해야 합니다. 참으로 말세가 되었습니다. 퀴어 축제가 얼마나 맹렬하게 젊은이들을 침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동성애를 반대해야 합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를 개혁하고 신앙 회복, 인륜도덕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며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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