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언약의 특징 (2020년 8월 2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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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言約의 特徵
2020년 8월 2일 주일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창세기 6:8-17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11).
성경을 공부하는 분들은 아담과 하와는 첫 인간이기 때문에 잘 알고 아담 언약이나 창조 언약은 첫 언약이기 때문에 내용도 잘 알고 중요성도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대개 노아 언약은 홍수로 심판하신 내용을 잘 알지만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 자녀들 그리고 함께 구원받은 많은 동물들과 자연과 맺은 언약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첫 번째 대 홍수로 인류를 거의 전멸하시고 심지어 호흡하는 모든 동물까지 심판하신 후 맺은 언약은 대단히 중요한 언약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노아 홍수 이야기는 이번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이전의 세상이 너무나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고 인간이 나면서부터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인간을 떠나버렸던 사실을 지난 번 우리는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이든 성적으로 타락한 세상은 계속해서 심판하심을 성경에서 봅니다. 노아 시대가 그렇고 나아의 아들 함의 자녀들이 저주받는 것을 보아도 그렇게 후에 소돔 고모라가 심판을 받고 가나안 땅이 심판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후손들을 에굽에 430년 동안 살게 하다가 그들을 통해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실 때 가나안 족속은 아이까지도 살해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가나안의 성 종교 심판 도구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로마 사회에 편만한 성 타락을 말씀하며 특별히 동성애를 부끄러운 죄악으로 정하고 하나님께서 로마를 멸망시키고 만 사건을 보아도 성경에 기록은 안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역시 성 타락 때문에 심판하신 역사적 사건임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 타락이 바로 인류를 말살시키고 인간의 영적 정신적 파괴의 주범이기 때문에 그렇게 무섭게 심판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부터 줄기차게 성 타락은 벌하십니다. 지금 미국이나 서구의 문화 막시즘을 통해 여성운동이 잘못 가게 하고 동성애를 보호하기 위해 양성을 무너뜨리고 32개 성(Gender)으로 나누어 이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성 타락을 교육하는 이런 시대가 되었으며 매년 퀴어 축제를 열어 성 타락을 부추기고 있는 좌파 문화 혁명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서구 기독교 국가를 심판하고 있음을 지난 번 말씀했습니다. 오늘 주보에도 불란서에서 1968년에 일어난 좌파 데모가 불란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좌파 막시즘이 세계로 번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칼럼을 쓴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경고로 여겼으면 해서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 타락은 다른 어떤 것보다 무섭게 다스리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로 세계를 덮은 대 홍수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노아와 어떤 언약을 맺었으며 노아의 언약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1. 審判 後 再 創造 言約
우리가 노아 언약이나 다른 언약의 특징을 연구할 때 단편적 구절만을 가지고 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단순한 말씀으로 주지 않고 한 세대를 전개하는 새로운 정책으로 주시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 언약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는 사회 현상을 보시고 노아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말씀하시고 그 시대를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신 것부터 노아를 쓰셔서 언약을 이행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직전부터 즉 6장 1절부터 우리가 노아 언약의 특징을 살피는데 포함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 드린 것처럼 노아 홍수는 하나님의 중대한 심판이었습니다. 특별히 노아 시대의 타락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 타락이었습니다.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시고 삼위의 하나님이 하나된 것처럼 부부를 창조하시고 자녀를 생산케 하시면서 하나님이 하나 되는 것처럼 부부가 한 몸 되어 만물을 정복하고 잘 다스려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의 사명은 아랑곳없이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목적을 상실하고 성의 쾌락에 빠졌습니다. 지금 오늘의 시대와 꼭 같습니다. 교인들도 자신의 목적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영광 돌리는 것인지 구체성이 없습니다. 막연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서 가정을 먹여 살리고 아이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맹이가 빠졌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정복하고 즉 물질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하고 심지어 자연까지도 지켜서 만민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벌어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버는 것이며 일을 해도 하나님 나라 하나 되는 일을 위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막스 레닌처럼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물질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며 자연을 보호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5절에서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벧전 2:5-6) 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 주야 비를 내려서 전 세계를 물속에 잠기게 했습니다. 금년 중국은 이 때보다 더 긴 50 주야를 비가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분적이었기 때문에 노아 홍수 때와는 비교가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번성했던 모든 인간을 다 물속에 잠기게 하고 심지어 노아에 의해서 뽑힌 짐승 외에는 모두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노아 가족만 남았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현상입니까? 노아는 배를 만들 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살아남았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 죽고 아무도 지상에 없었습니다. 저들의 생활은 순전하게 자급자족하고 스스로 새롭게 문화와 문명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동안 있었던 음악도 철기나 동철도 목축 방법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이런 막막한 환경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그 아들들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할 일을 주시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내용이 특이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기 위하여 방주로 들어가고 생명을 새와 가축을 종류대로 각기 암수 둘씩 방주에 들어가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멸종시키는 가운데도 이미 창조된 생명들을 지키시겠다는 의지를 말씀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다 준행했다고 했습니다.
이우 40 주야를 비를 내리고 다시 땅에 가득한 물이 150일을 넘쳤더라고 했습니다. 마르는데 또 150일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준비 17일이 걸렸으니 모두 377일 그들이 배속에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이었습니다. 사람이 1년 넘게 먹을 양식과 그 짐승들이 먹어야 할 양식을 싣고 배가 둥둥 떠 다닌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의 전설이라고 부정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홍수와 비슷한 기록들이 바벨론에도 있고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라랏 산에 노아의 배가 땅 속에 묻힌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배를 모형으로 지금 켄터키 주에는 노아의 배를 만들어 놓고 관광지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을 봅니다. 하여간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했습니다.
홍수가 그친 후에 노아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당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주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8:21-9:3).
9:8-13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스리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느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8-13).
창세기 1장에서 창조 시 주신 축복을 다시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다시 창조를 하시는 것입니다. 창조된 것을 살리셨지만 실제적으로는 창세기를 다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사용하셔서 재창조의 바탕을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나 하나님의 주시는 고난은 같은 맥락으로 믿는 자 선택 받은 자들에게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의 대 심판을 새롭게 하시는 기회를 만드는 바탕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를 마치 세례 받고 새 생명이 되는 것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런 심판과 재 창조의 역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심판으로 바볼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야 저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회당을 만들어 그 곳에서 예배하며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해서 오늘날 유대인을 만든 것입니다. 말을 듣지 않고 심판을 결심하면 무섭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노아를 통해 구원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2. 救援 言約
노아는 당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쓰신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홍수 이전에 이미 6:8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을 앞에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을 입은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하는 원리는 이후 줄기차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적용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받을 만한 점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인간의 장점을 보고 구원하시는 것을 폐지하셨습니다. 다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장점을 보고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말하는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다 철저하게 타락해서 완전 타락해서 아무리 선해도 다 결점이 있기 마련이고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약점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베소서에 보면 은혜로 구원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인간이 구원 받은 것을 자기 능력으로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으니 주신 구원을 자랑하지 말고 겸손하게 은혜를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말은 공짜로 구원받았다는 말입니다. 내가 은혜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 없는데 구원의 엄청난 선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은 미리 우리를 선택하시고 세상에 보내내셨습니다. 부모가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실 때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나를 계획하시고 구원의 무리 속에 포함시키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예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를 언약으로 한 공동체가 되어 예수님이 희생하심으로 우리도 희생하게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 갈이 못 박은 것입니다. 그 때 우리도 죽고 우리도 부활할 때 살았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 때는 계획 안에만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성령께서 이런 선택된 자를 찾으십니다. 이미 구원받았지만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날 하나니은 나를 인도하셔서 교회나 집회에 출석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이미 죽고 살았다는 것으 깨닫게 되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십니다. 이미 구원 받은 자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해서 내가 주님을 믿는 믿음을 발표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받은 것을 인식하게 하십니다. 누가 뭐래도 내가 구원 받은 것을 내 마음에서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언제나 과거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모를 때 예수님은 나와 함께 죽었고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을 인식하여 나타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의 구원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입니다. 만일 내가 믿고 싶어서 내 마음이 착해서 내가 믿은 것이면 내 행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자가당착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로교가 성경을 가장 잘 가르친다고 확신하며 구원의 확신을 갖습니다. 내가 예수를 확실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이 엄청난 구원의 선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래서 참된 크리스챤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3. 보존 言約
마지막으로 노아 언약은 보존 언약입니다. 특별히 창조시 창조 언약을 다시 되풀이하시면서 다시는 인간의 죄악 때문에 자연까지 괴롭히고 멸망당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며 무지개로 증거를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무지개가 활 모양으로 자연을 위해 싸우는 도구처럼 그 방패를 상징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동성연애의 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질서를 지키고 창조 시 주셨던 축복을 다시 주시고 인간에게 다시 사명을 가지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창조하실 때 무질서한 것을 질서로 자연 법칙대로 달과 해가 있었고 어름과 더위가 계속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해는 주님 재림할 때까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자연 질서를 연구해서 사용하는 과학을 지금도 가능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 질서와 순서를 그대로 존속케 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많은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기적은 자연 질서의 순서를 단축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적과 기사를 앞세워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연 질서 유지보다도 이적을 베풀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이런 이적을 좋아하지 않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은 자연 질서를 지키십니다. 우리도 자연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자연 질서를 차단하시고 기적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을 자꾸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험 받으실 때 마귀가 그런 요구를 했습니다.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별 것도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탄의 시험을 받아들이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면 진짜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로 인정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부하셨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받아주어 다치지 않을 것이라며 뛰어내려보라고 했습니다. 이 때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프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기도하고 의사에게 가서 진찰 받아 약을 먹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노아 언약은 인간이 바로 이런 일을 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게 만드는 위험성을 막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기도하고 의사에게 가서 진찰 받고 약을 사서 복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양식입니다. 일은 안하고 일확천금을 위해 복을 달라고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열심히 일터에 나가 논을 벌어야 하나님의 진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학자들이 찾아 연구한 자연 질서를 지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보존 언약에서 이미 이런 원리를 계속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믿음을 앞세워 기적을 도모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프면 의사에게 가고 의사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정한 자연 질서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때 언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순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의 순리 대로 자연이 움직이기 때문에 자연 섭리를 따라야 합니다. 약을 발명해야 하며 자연 원리를 연구해서 자연의 섭리를 따라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인들이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기적을 너무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시면 지금도 많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꼭 통해서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대로 하나님은 지금도 더 많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 크리스챤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結 論
노아 언약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더라도 절대로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벌하시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남아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심을 알고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 다시 새 희망을 보고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새 창조는 창조적 파괴에서 시작됩니다. 전에 것이 남아 있으면 새로운 일이 장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은혜로 구원하심을 확신하고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은 계속해서 은혜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조금 한 일을 자랑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어려운 일을 주실 수도 있고 잘 못하면 벌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기적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은혜가 없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연 법칙대로 하시는 것을 지금도 선호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마귀의 장난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기적에 의지하지 말고 기적을 베푸시면 참으로 감사하고 기적이 아니더라도 기도하며 순리적으로 살면 됩니다. 코로나 질병에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야지 나는 믿음으로 산다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연 질서를 보존하시고 지키십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해는 계속 동쪽에서 뜨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아 언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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