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라 하리라 (2020년 9월 13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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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라 하리라
2020년 9월 13일 주일 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창세기 17:1-8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5)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여러 가지로 훈련하심을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하심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사랑 체계를 세우려 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행으로 의를 규정하지만 불완전한 죄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결국 인간 자랑을 하기 쉽고 고생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며 또한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사람간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선행보다 믿음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신뢰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또한 정신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갖고 살면 좋은데 죄성을 가진 인간과 같이 살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속임을 당하고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느냐? 하나님 믿으면 사람인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혹 손해 보는 면을 보상해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으면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사실상 하나님은 믿고 손해 보는 것은 보상해주십니다. 신앙 생활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훈련하시는 하나님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여기는 의인을 지상에서 아무 뜻도 없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허무한 인생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인간들을 선택 훈련해서 인류 구원의 큰 계획을 세우시고 아브람을 선택해서 한 민족을 이루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인이며 과거에는 여행해도 평생 볼 수 있는 땅이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한 인생이 태어나서 걸어서 볼 수 있는 세계는 아주 작은 땅 덩어리 안에서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살다가 죽기 마련입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은 훈련하셔서 보다 넓고 크고 원대한 땅을 보여주시고 마음도 넓혀주시고 온 세상을 향하여 일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을 만들어 세계를 복음화하고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한 뜻이며 우리 또한 선택하셔서 우리를 성령께서 감화해서 예수 믿는 믿음을 심어주셨고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대하시고 우리를 새 이스라에 민족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아브람 같이 좁은 땅에서 뱅뱅 돌다 죽을 인생을 뽑아 아브라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 이름을 바꾸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이 위대한 아브람의 변화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 마음 또한 아브라함이 되는 놀라운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1. 아브람의 세계와 신앙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주셨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사람은 나면 자식의 이름부터 집니다. 아마도 어느 나라나 같은 풍습일 것입니다. 지금은 법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에 나면 바로 이름을 지어 출생 기록부를 만들고 미국은 호적이 없기 때문에 의사가 작성한 병원의 출생 신고서가 시민증이 됩니다. 한국은 호적이 있는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 하지만 미국은 병원에서 만든 출생 신고서를 시청에서 등록하고 보내면 그것이 시민권 역할을 합니다.
이름은 부모가 가급적이면 자녀가 평생 써야 하기 때문에 뜻을 부여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부르기 쉽고 성경에 있었던 이름이나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나 따라 짖지만 동양은 뜻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제 이름은 명길입니다. 밝고 행복하고 잘되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미국 와서 David이라고 지었습니다. 왜냐면 예수 믿고 다윗이 참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고 음악가고 전쟁 영웅이고 위대한 통치자이며 나라를 통일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였습니다. 저도 시를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들, 딸들의 이름을 성경에서 따 왔는데 그런 인물이 되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장자 아브람을 지었을 때 아마도 자식을 많이 낳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장자가 자기 자식들을 잘 돌보고 가정을 잘 꾸리라고 자기 대신 대가족의 아버지 노릇을 하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 같습니다. 하여간 이민 도중 아버지 데라는 죽고 아브람은 동생이 일찍 죽어서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르심에 응답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부족한 아브람은 흉년이 들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잊었습니다. 바로 애급으로 내려 가버립니다. 하마터면 예쁜 아내 65세가 넘었어도 임금이 탐낼 만큼 예쁜 아내를 바로의 후궁으로 빼앗길 번했습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애급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자기 생명 살 잔머리를 굴려 임금이 부르면 오빠라 하라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조카는 누가 살립니까? 남은 사래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위기를 모면케 해 주시고 물질도 주셔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와서 삽니다.
그가 물질이 많아지자 집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 조카 롯을 분가시켜주었습니다. 좋은 목초지를 그가 살도록 하고 자기는 풀이 없는 지역을 택했습니다. 조카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원래 약속한 자손을 주시겠다고 확신시키면서 하늘의 별 떼를 보여주시고 이와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늙은 아브람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약한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약속하시고 또 약속하시고 말씀하실 때 그것을 믿는 것은 아주 초보적 신앙입니다. 그러나 초보적 신앙을 하나님께서 의의 기준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너의 소유로 주시겠다고 하니 그 넓은 땅을 어떻게 자기 소유가 되게 하겠습니까? 그는 그 땅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장지를 삼을 만한 땅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 넓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저당하는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시고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최대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잘 못 느낍니다. 어떤 분들은 갑자기 기적적으로 예수 믿어서 기억이 생생한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생생한 기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성령은 안 보이는 바람과 같은 분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쌔게 불면 나무가 흔들려서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미미한 바람이 불어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이며 성령께서 이미 나를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사랑의 확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선물이 있으면서 우리는 삶이라고 하는 큰 짐을 지고 돈이 없고 사업 안 되고 건강이 어렵게 되면 그만 폭삭 주저앉고 맙니다. 구원 신앙을 적용하는 힘이 모자랍니다. 역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적어서 그럽니다. 예수 믿지만 어려움 오면 그만 흔들립니다. 아브람은 그런 믿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훈련시켜서 세계적인 사람을 만드실 계획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람이 가족이나 부양하다 죽을 인생이지만 가족 부양도 하면서 더 큰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적 인간을 만드시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 인정받은 초기 신앙을 바탕으로 의인의 삶인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 성장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값없이 은혜로 예수 믿는 구원신앙을 주시고 구원의 증표로 나를 변화시켜주셨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믿음이 내 안에 성령님이 모든 구원의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초기 신앙을 가진 사람이 한 가지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하고 포부를 넓혀야 하고 우리의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그 넓은 시야를 가져야 넓은 마음을 가지고 더 큰 신앙으로 발전합니다. 지금 아브람은 자기 인생 살다가 죽을 인생이지만 그는 더 큰 시야를 보고 그의 인생이 바뀌어야 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복이 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입니다.
2. 그 큰강 유부라데까지
그래서 하나님은 좁은 아브람에게 처음에는 가난 땅을, 다음에는 네가 눈으로 보는 땅을, 나중에는 아들 이삭을 주기 직전 에급강에서 유브라데까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소명감을 인식하고 지경을 넓혀야 자랍니다. 좁은 세상 좁은 마음으로 사는 자는 그것밖에 바라보지 못합니다. 좁은 인간은 신앙을 좁게 살다 죽습니다. 그러나 지경이 넓어지면 그만큼의 인생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 폭이 큰 신앙이 자신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의 폭 또는 지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고 태어나지를 못합니다. 좁은 땅에 태어나서 그 자리를 맴돌다 보면 인생은 아주 좁게 살다가 죽습니다. 그래서 성장해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밥먹고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서 보다 넓은 땅을 볼 수도 있고 그래서 포부가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세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평화봉사단에 가입해서 세계에 나가 봉사하면서 세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넓은 세계로 향하게 하고 장차 사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세계로 진출하는 눈을 갖게 만듭니다. 참 좋은 교육방법입니다.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시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제 말 징병당하지 않으려고 학교 선생님이 되셔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살다가 눈을 못 보게 되어 저의 어머니를 시부모에게 맡기고 혼자 선생질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만 유혹에 빠져 제 작은엄마를 얻어서 저의 형제는 9남매나 됩니다. 남편 사랑을 못 받은 저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너무도 가난하게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자신도 제 밑으로 여동생만 넷을 길렀습니다. 아무리 못 살아도 큰 아들은 가르쳐야 하겠다고 해서 겨우 저만 중학교 중단하고 고등학교는 30 리 거리에 있는 정읍 농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믿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키워주신 것입니다.
저는 제 사모를 만나는 무렵 미국 선교사와 창세기를 공부하며 변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가난해서 군대 마치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변화되니 하나님께서 사모와 결혼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1970년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습니다. 초기이니 저에게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변화하여 세계를 보게 하신 하나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고생도 했지만 목사가 되었습니다. 돈은 별로 없었고 교회 세우며 참 고생했습니다. 지금도 사서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족한 저를 통해서 중국을 보게 했고 미국에서 자녀들 잘 되게 해 주셨고 저의 형제들이 다 잘 살게 해 주셨습니다. 집 자랑이 아니라 제가 예수 믿고 생각도 못했지만 부인을 통해서 넓은 땅으로 이민 와서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니 저는 늙었어도 지금 새 이스라엘 운동을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보니 지금 미국이나 한국이나 좌파 빨갱이 사상으로 물들고 있는 이 때 참된 믿음을 찾는 새 이스라엘 운동으로 성경으로 돌아가는 일을 우리 재미 한국 민족이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습니다. 말이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다가 부르시면 갈지언정 하나님께서 지금 보여주신 넓은 시야입니다. 새 이스라엘은 우리 한민족이 미국을 통해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남은 민족을 선택 새 이스라엘을 만드셨습니다. 그들 복음은 로마를 거치면서 기독교회가 되었지만 중세는 어두웠습니다. 성경을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을 이루어 성경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 개혁의 열매 청교도들의 신앙과 사상으로 세계 최초 삼권분립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헌법을 가지고 미국을 건설하여 세계 제일의 나라가 되기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와서 잘 먹고 잘 삽니다. 그러나 이 축복을 우리는 그냥 지나치면 허무합니다. 그런 우리는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청교도 정신과 미국의 대 각성 운동의 정신을 받아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 선교를 가장 많이 한 나라로 부상했습니다. 미국의 정치 제도를 가지고 나라를 세우면서 미국의 새 이스라엘 정신을 그대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는데 핏줄이 아니라 신앙 줄을 통해서 선택한 것입니다. 그 신앙을 우리가 받았고 지금 미국의 소수만이 이 신앙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미국 장로교가 그것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장로교 소속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 민족과 미국의 소수의 참 성경을 사랑하고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새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 주류 사회에 합류하여 이들과 함께 새 이스라엘 민족 운동을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 되어 세계를 다시 부활시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 한국의 신앙 열정의 불을 살려가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잡지를 만들고 교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세계를 보고 중국에 갔고 세계를 보고 지금 꿈에 벅차 있습니다. 아직 미약하지만 이런 것을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운동의 회원이며 우리 교회가 미약하지만 이 축복의 물줄기입니다. 확신 가져야 합니다.
3.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열국의 아버지라고 번역되는 이름입니다. 세계 인민이 아브라함의 핏줄이며 피를 나누어준 아브라함이란 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나누어준 영적 아버지란 뜻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사상 체계를 가지고 아니 그 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노력을 하다 예수님 재림하면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들 앞에 놓인 삶이며 영생입니다.
아브람을 불러서 아브라함에 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셔서 우리 인생의 폭을 넓히고 세계를 바라보며 큰 희망을 가져야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설교가로 유명한 한 목사님은 하나님은 믿는 만큼의 하나님이 되신다 했습니다. 크게 믿고 큰 포부를 가지고 믿으면 크신 하나님이 되지만 작은 마음으로 믿으면 작은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가지면 크게 살게 하시며 우리에게 큰 은혜를 더하고 작은 믿음 가지고 늘 걱정 근심하면서 아주 작은 것 가지고 마음 쓰고 오해하고 살면 하나님은 그에게 아주 작은 하나님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앙은 있는데 속은 밴댕이 속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가정이 불화하고 교회가 싸우고 자기 작은 욕심 채우려고 독제하고 나라를 망치게 하고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고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국가의 힘으로 독제해서 생명을 죽이는 그런 일들을 저지르는 것이 오늘 좌파들의 모습입니다. 싸움을 제일 교묘하게 잘 해서 사람을 충동하고 거짓으로 선동해서 힘을 모으고 그것으로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밴댕이같은 마음 가졌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싸웁니까? 따져보면 다 옳고 다 주장이 옳은 면이 있습니다. 옳은 것을 주장하며 싸우지 나쁜 것을 위하여 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야를 넓히고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그것이 내 믿음을 크게 하고 내 인생을 크게 합니다. 늦지 않습니다. 저도 75세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름 받았던 나이입니다. 그래서 저보고 꼰대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즐거이 꼰대가 되겠습니다. 왜냐면 지금 청소년들이 노인 존경을 하지 못하고 새 시대에 둔하다고 어른들을 멸시합니다. 희망이 없는 현상입니다. 저들이 고전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고 학문을 하고 지성을 갖추려면 고전을 읽고 고전을 알고 성경을 알고 믿음을 가지고 노인들로부터 지혜를 배워야 하지 새 시대가 죄로 치우치고 좌파로 가는 시대가 아닙니까? 어떻게 청소년들이 고전을 무시하고 노인의 지혜를 무시하고 알지도 못한 무식한 아이들이 자기들의 타락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노인을 폄하하는 말로 희롱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입니까? 교회가 책임지고 부모들이 책임지고 잘못 가는 아이들을 깨우치고 그런 언어 타락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쓴 칼럼입니다. 노인을 존경하고 고전을 사랑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고 부모를 존경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아이들이 진정한 지식인이고 진정한 지도자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일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좌파의 침략을 막고 계속해서 복음으로 인생이 바뀌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될 때 예수님 재림하셔서 영원한 행복 나라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
結 論
우리는 오늘 아브람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그의 후손을 쓰시고자 마지막으로 이름을 바꾸어주신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은 작명자를 찾아가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 달라 해서 자녀들 이름 짖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도 바꾸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실제 부르는 이름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보다 널은 세계를 바라보고 성경에서 명령하신 일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내 시야가 넓어지고 이제 큰일을 위해서 아주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기도 제목이 바뀌고 하는 일들이 일치가 되고 교회가 가는 길이 분명해지면 하나님은 모두에게 더 큰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알버커키 한인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소수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이 분명하고 해야 할 일이 분명하며 복 받는 길이 명백해지면 하나님은 모두에게 행복을 주시고 우리의 마지막 인생을 꽃밭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천국의 시민으로서 확실한 영광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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