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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맛이 나는 아브라함 (2020년 9월 20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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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2,934회 작성일 20-10-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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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맛이 나는 아브라함


2020년 9월 20일 주일 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창세기 18:1-15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9).


     아브라함은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25년간 그는 참 많은 고난을 겪었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의 믿음도 많이 자랐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내 생명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신앙은 자랍니다. 마지막 내 생명도 주님의 것입니다 할 때까지 신앙은 자라야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믿음의 선배들도 이 부분에서는 비슷한 맥락을 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 자연 그 향기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제가 제목을 인간 맛이 나는 아브라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돔 고모라를 멸하시고 나서 이삭을 주시려고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세분이 맞은편에서 오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분들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달려가서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자기가 사는 지역에 오는 분은 대부분 낯 설은 객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환영하는 것은 그 사람들을 알아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평소의 모습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주실 것이며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로서 강한 나라를 주시겠다고 다시 약속하시며 특별히 그를 부른 구체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를 택하신 뜻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가르친 것은 아브라함의 사역을 이해하고 아니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한마디로 알려주는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뜻을 말씀하고 내년 이만 때에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을 거듭 말씀한 후 3분의 사자들은 소돔 고모라 멸망의 일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곳으로는 2분만 갑니다. 아마 3분 중 한 분은 메시야가 아니었나 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신 장면에서 아브라함에 알지 못했지만 그 아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준 가장 중요한 부분에 참여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왜 한 분은 소돔 고모라를 가지 않고 2사람만 갔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인간성과 그가 해야 할 사명과 소동 고모라를 놓고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통해 오늘 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주의 사자들을 대접하는 아브라함

     우리 한국도 전통적으로 손님 대접을 잘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참 가난하게 살았지만 남 주기를 좋아하고 특히 일가친척이나 집 없이 돌아다니는 분들이 오면 지극 정성으로 잘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이 분들이 마음이 편하니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머물렀습니다.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손님이 와서 며칠씩 묵어가면 참 어려운 것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손님이 가셨으면 하는데 비가 옵니다. 그만 가시라고 “가랑비”가 오네요. 하니까 손님이 대답합니다. 있으라고 “이슬비”가 오내요 그러더랍니다. 참 불편하죠.

     그런데 핵 가족시대가 되고 서양 문명이 불어닥쳐 지금은 남의 집에서 머무는 것이 아주 불편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특별하게 어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집에 초청해서 한 끼 잔치를 하는 것은 있어도 그것도 음식점에서 해치우는 경우가 많고 손님 대접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브라함이 한 일을 모범으로 삼습니다. 히브리서 13:3에 아브라함에 대한 이 사건을 말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손님 대접하다 보면 천사들을 대접하는 축복을 누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여간 해서 대접을 하지 않습니다. 밥 먹으러 가자 하면 한국인은 그 말을 한 사람이 당연히 돈을 내는 것으로 묵인하고 따라가서 밥을 먹습니다.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담스러워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자기 것만 쏙 내고 맙니다. 오히려 그게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상 예수님은 돈을 가지고 전도여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지갑을 갖고 전도여행하지 말라 하십니다. 대접을 받으며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참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2에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권면합니다. 믿음의 실천 장입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말합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라”(딤전 3:2)고 권면합니다. 베드로도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벧전 4:9) 이렇게 권면합니다. 참 많은 곳에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기독교인은 사람을 좋아해야 친구도 되고 전도도 하고 화합도 하고 특히 교회가 하나 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한 몸 되는 성격을 형성합니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혼자 있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야 외롭지 않고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일꾼이 됩니다.

     둘째 손님 대접은 주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서 돈도 모으고 재산도 모읍니다. 그러나 재산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손님을 대접 잘하는 사람은 나누기를 잘 합니다. 이런 분은 재산이 없을지라도 참 마음이 풍부합니다. 

    셋째 남을 대접하는 자는 자기도 대접을 잘 받습니다. 줄줄 모르면 대접 받는 것도 적어집니다. 사람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만족을 얻습니다. 베풀어 주는 사람이 더 받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더 많이 줍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어머니를 더 사랑합니다. 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넷째 대접은 사랑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교인을 사랑하고 그래서 대접하기를 좋아합니다. 대접하기를 잘 하면 서로 사랑하는 일에 도움이 됩니다.

     교회가 친교하는데 사실은 점심을 먹는 것은 여간 힘이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라 봅니다. 어지간히 큰 교회를 제외하고는 점심을 나누며 교제하고 대화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성도들이 이렇게 친교 나누는 것이 교회 단합에 힘이 되고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는 좋은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몇 분 안 되어도 점심을 나눕니다. 부담 없이 점심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원망 없이 하라는 베드로의 권면입니다. 대접하는 일에 원망이 끼어들 수 있습니다. 원망은 섭섭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대접하는데 원망이 끼어든 경험이 많습니다. 첫째는 대접하는 사람이 원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대접했으니 돌아올 대가를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없애야 진정한 대접입니다. 둘째로 대접 받는 사람도 원망하기 쉽습니다. 대접 받을 때 부담감이 작용합니다. 그 부담감이 자꾸만 더해지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에게 잘 해주고 욕을 먹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합니까? 그러면 둘 다 사이가 어렵게 되고 대접이 끊어집니다. 

     또한 대접하는 사람이 성의껏 대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을 보십시오. 잠깐 있으라 해 놓고 급히 가서 소를 잡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고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잘 대접받고 와서 그것을 평가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 섭섭합니다. 제 친구 목사님은 심방 가서 참 대접을 많이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대접한 집사님이 교회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전화했더니 아무 것도 아니예요 대답합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더니 지난 방문 때 열심히 음식 장만해서 목사님 대접했는데 내가 만든 음식보다 그 날 김치가 없어서 김치는 사온 것을 드렸는데 목사님은 김치가 맛있다고 그것만 드시고 침찬하셨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음식이 맛이 있었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김치 사온 것을 모르고 자기가 생 김치를 좋아해서 잘 먹은 것이니 정말 집사님 음식 참 맛이 있었다고 칭찬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대접 받고 원망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대접해주고 대접 받고 원망이 일어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 참 많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경우를 참 많이 경험한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우리가 서로 대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같이 늙으면 그리할 수 없으니 부담 가지면 안 됩니다. 미안한 마음 가지면 대접하는 사람이 더 미안하게 됩니다. 대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접 받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대접을 받으러 하거든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이 황금률입니다. 이런 마음은 천사를 대접하는 행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2. 부르심의 목적을 말씀하신 하나님

     대접을 받은 사자 중 하나가 말합니다.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도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했습니다. 아들 낳을 때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장면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삭이 어떤 아들인가를 잘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 중 한 분이 아브라함에게 돌아온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삭의 탄생이었습니다. 이 말은 장차 이삭의 자손 들은 메시아와 함께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장면입니다.

     그들이 떠날 즈음에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오늘 읽은 요절 말씀입니다. 보로소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구체적 목적을 설명합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지금까지 말씀 주고 약속하고 자손을 주고 복을 만드실 이유는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를 지키는 백성이 되고 세상에서 의를 행하고 특히 공도를 지키는 백성 되도록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할 일은 자손들이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도록 교육해야 하며 특히 자신들의 행위는 옳고 바르며 세상에서는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여 본인 자신은 의로운 행동을 하고 옳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공도 즉 공평한 정의가 실현되도록 본을 보이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관심을 갖고 공의의 실천자가 되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성경 공부합니까? 공부로 끝나면 아니됩니다. 공부하는 목적은 그것을 세상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의가 살아나도록 사회 참여도 하고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고 정부가 잘못할 때는 소리를 내야 하며 나라가 망할 때는 힘을 합쳐서 기독교를 지키고 교회를 수호하며 나라 또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잘못된 나라는 망하도록 해야 하지만 성경에서 나온 자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나라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면 당연하게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대해 소리를 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필요할 때는 무저항주의 데모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혁명을 해서는 아니되며 살상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사회 정의를 위해 순4를 각요하고 남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를 흘릴 각오로 정의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성경 공부하는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기독교는 정치에 가담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된 이론입니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원리를 나라에 적용하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세웠고 그래서 영국을 떠나 이 땅에서 자기 동족과 독립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탄생시켰습니다. 장로교는 미국 정부의 대통령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Wasp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인 영국인 장로교인이 주류라는 말을 이렇게 부릅니다. 개혁주의자 칼빈은 제네바 시장을 했습니다. 성경은 정치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해야 됨을 선포합니다. 그것을 칼빈의 문화주의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일어나서 부조리한 사회를 바로 잡지 않으면 누가 사회를 바로 잡습니까? 기독교는 우상 종교도 아니고 기독교는 종교에만 집중해야지 정치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은 성경에 없습니다. 잘못된 종교관이며 정치관입니다. 우리는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이 잘못가고 있을 때 지적해주고 선지자 노릇을 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의 잘못을 지적하고 지금 문화 막시즘에 먹혀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 말을 하고 대통령을 뽑고 국가의 반 기독교 정책을 막아서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할 일이며 지금 하나님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사이 주사파 정부의 독제정치에 반항하는 것을 보며 한국 교회가 둘라 갈라진 모습을 봅니다. 그 동안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공산세력과 사회주의에 복음을 팔고 WCC가 교인들이 보내준 헌금으로 선교사를 죽이고 좌파 운동과 신 막시즘 운동에 앞장 서는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회 정화라는 이름으로 반기를 들고 나와서 야단법석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적반하장이고 하늘이 웃을 사이비 목사들의 행패를 봅니다. 정말 성경을 팽개치고 사탄 노릇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인간이 목사가 되어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을 배반하면 얼마나 악한 사람들이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공도를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이며 이를 위하여 택함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잘못된 교회를 잡고 잘못된 기독교 신학을 잡아야 합니다. 성겨도 떠나고 하나님도 떠난 자들이 무슨 기독교라고 세상 사람들을 우롱하고 있는지 참 희한한 교회 타락을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새롭게 들립니다.

3. 무서운 심판을 두고 기도하는 아브라함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소동 고모라를 심판하러 가는 2분들은 떠나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섰다고 했습니다. 한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심판은 때때로 의인들이 함께 당하기 때문에 억울한 징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대를 멸하실 때 어쩔 수 없이 의인도 억울하지만 징계를 받게 됩니다. 코로나 병도 교인이라고 피해가지를 않습니다.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처음 아브라함은 의인 50만 있으면 멸하시겠는가고 묻습니다. 50명의 의인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의인이란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진실한 신앙인 50명만 있었으면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를 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45명이 있으면 멸하시겠느냐고 다 시 묻습니다. 45명을 찾으면 멸하지 않겠다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묻습니다. 40명이면 어떠하시겠느냐 묻습니다. 결국 10명까지 내려갔다가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깊고 큰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신자 의인을 살리기를 원합니다. 6.25 사변 때 빌리그라함 목사의 간청으로 하나님은 트루만 대통령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빌리그라함 목사는 한국에 진실한 성도들을 살려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트루만은 급하게 미군을 파송하고 유엔을 움직여서 유엔군의 이름으로 한국에 가 6.25.전쟁을 이긴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진실한 기독교인은 중요합니다. 나라를 살리기도 합니다. 의인 참 의인 진실로 믿는 의인을 하나님은 살리십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썩어도 진실한 기독교 지도자 50명만 있으면 멸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의인이어야 하지 사이비 신학자 예수도 성경도 안 믿는 그런 신학자들이 자기들 배운 것이나 자랑하려고 하는 그런 목사들이 아니라 정말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도를 행할 줄 아는 50명만 있으면 심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사 우리 교회가 먼저 회개해서 이런 때 의인들이 많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의인이 당하는 것이 아까워 문재인을 쫒아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노를 푸사 심판하실 대 악한 자를 심판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結   論

     아브람은 가장의 책임을 지고 이민 왔으나 먹을 것 때문에 부인까지 팔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깨우쳐 작은 믿음 갖게 하시고 그 작은 것을 보시고 의롭게 여겨 의인의 삶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를 훈련시켜 마음이 넓게 시야가 넓게 활동 범위가 넓게 이름을 바꾸어주셔서 열국의 아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25년을 훈련하셨습니다. 때까 가까이 와을 때 천사 2명과 함께 예수님의 표상인 한 분과 함께 아브라함을 방문 그에게 대접을 받고 그에게 1년 후면 아들을 낳게 하시겠다 하시며 하나님이 그를 택한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기독교인의 세상과의 성격을 규정 짖는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믿고 의로운 삶을 살며 세상의 공도를 실현하는 후손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도를 닦는 불교 신도도 아니고 우상을 보면서 숨는 그런 신도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의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지금 한국은 최대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교회는 진짜 교인과 사이비 교인으로 나누어 있고 국민도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교회가 회개해야 하고 사이비 목사는 물러가야 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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