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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召命)과 행복(幸福) (2020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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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2,862회 작성일 20-10-1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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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召命)과 행복(幸福)

 

2020531일                                                                                                                                              이명길 목사

 

말씀: 창세기 1:28-31, 2:18-25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살면서 보람을 느끼며 평화롭고 즐거운 삶, 풍요로운 삶 모두가 행복을 주는 삶입니다.

그러나 행복의 여건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람의 가치관과 취미 그의 세계관과 삶의 철학 등 행복을 결정해주는 기준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돈이 행복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행복은 삶 자체라고 보아 자기가 가장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삶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것을 누리는 사람의 마음과 만족도에 따라 죄우됩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어떤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의 만족도에 따라 정해진다고 봅니다. 하여간 행복은 누구나가 추구하기에 미국 헌법은 행복 추구권을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어떤 특수한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별로 돈이 없지만 참 행복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행복 정도는 미개한 나라들이 더 높다고 합니다. 문명인의 기준에서 보면 정말 저런데서 어떻게 살가 하고 걱정하지만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저들은 더 많이 누리고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만족도는 꼭 어떤 절대적 조건하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닝의 형상으로 지어진 만물의 영장으로 높이며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믿고 의지할 때 가장 행복함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지나 입은 옷은 누더기가 되고 먹는 것은 매일 만나와 매추라기 고기 외에는 없고 온전한 집 한 체 없이 장막에서 뜨거운 사막길을 여행하던 광야의 백성들을 향하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선언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을 향해 행복자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수긍이 가지 않는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먹을 것이 없더라도 매일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하더라도 편하게 눕고 일어날 집 한 체 없을지라도 저들에게 행복한 마음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들은 행복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이 가지는 가치 있는 것들이 이 사람에게는 아무런 행복의 가치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삶의 가치와 이5가 분명하고 삶의 목표가 확실하며 그 목표를 달려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주어질 때 느껴지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아이들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대학이나 학문을 추구하면서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한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면 그 과정을 충분히 이길만한 즐거움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그래서 고난과 역경을 지나 원하는 것을 얻을 때 참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고된 과정을 즐겁게 마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시고 그 계획 속에서 나 한 사람을 선한 뜻으로 예정하사 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나를 구원해주시고 분명한 목적을 향해 갈 수 있는 목적이 분명하고 목적이 있는 삶을 살도록 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분명한 목적 특히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창조이유로 주신 말씀, 그 말씀을 상실한 죄인된 인간, 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 그래서 구원 자체가 특혀 하나님의 부르심을 상실하고 다시 구원으로 되 찾아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갈 때 바로 처음 창조된 정체성을 회복할 그 때 최고의 행복을 누낄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일 여행하거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분명한 행선지를 알고 걷는 수고를 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목적을 달성했을 때 만족하는 그런 삶을 행복이라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1. 創造召命 喪失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은 소통을 통해 인간과 하나되고 인간이 만물을 정복하고 잘 다스림으로 그들을 보존 자연과 인간과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을 이루기 위함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 곧 다스리는 자연의 왕으로 세우시고 자연을 정복 자기들의 재미나 취향을 충족시키는 만행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되어 영원히 행복하소통하며 살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번성하고 충만하여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 노릇하는 특권을 위해 하나님은 아담이 짐승의 이름을 짓는 것을 보셨습니다. 홀로 이일을 하는 것이 좋지 못하셨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후에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을 아담의 갈비뼈를 재료로 하여 여자를 창조하시고 결혼시켰습니다. 결혼시킨 이유는 만물을 잘 다시는 사명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여성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아이를 생산하여 자손을 번성케 하고 아담과 함께 왕 노릇하는 일을 잘 해야 했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단순히 부부의 즐거움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두고 기르고 교육해서 그들로 하여금 만유 통일의 일꾼으로 만들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결혼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하게 인간을 하나님 형상으로 만드셨을 때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고 결혼 또한 가정의 목표가 무엇이며 가정의 소망이 무엇이며 가정을 이루실 때 이미 시 사명으로 부르셨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되는 일이 가정에서만이 아니고 인생사는 모든 사회인들이 한 가족처럼 하나 되어 하나님께서 주어진 사명을 다하도록 불러주신 것입니다. 사명이 소명이 되었습니다. 만유의 주제시고 치리하시는 왕중왕께서 인간을 불러 명령하신 소명입니다. 할 일을 주시고 할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감과 권리를 주시고 이 일을 위하여 모든 동산에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받은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기 이전 아담과 하와는 정말 행복한 존재였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자신들의 삶은 낙원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탄이 와서 유혹하는 바람에 넘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사람 사람의 개인에 대한 소망이나 비젼 이야기는 많이 합니다. 그러나 가정의 소명에 대해서는 참 부족합니다. 성경은 개인의 목적의식도 매우 중요하지만 가정의 목적의식 또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을 말씀합니다.

왜 범죄 이후 세상의 가정들은 불안하고 불행하고 더구나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자유롭고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시절인데 자살자는 늘어가고 잘사는 국가에서 왜 인생을 포기하는 사태들이 발생합니까? 가정이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왜 불행합니까? 많이 가졌지만 진정한 목적의식이 없고 특히 인생 살아야 할 이유와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행복한 삶의 가치를 누리며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소명을 잃고 마귀에 속함으로 가정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2. 重生召命 回復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인간의 옷을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내 의지도 아니요 내 장점도 아니고 다만 100%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말합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을 받았으면 전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왜냐면 내 믿음이 완전한 믿음일 때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도 구원도 계획 속에서 작정하시고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진실하시며 공의롭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 한 사람 한 사람 계획하에 하나님의 은혜를 주어 새 사람 만들 사람을 정하시고 그가 태어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말씀을 듣게 하시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가 중생하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을 자기 생명을 주고 구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의 목적과 자기 정체성을 찾고 하나님의 원래 주신 목적을 위해 살아가도록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성령의 최대의 역사이고 최대의 기적이고 아무렇게나 살던 사람이 가치를 느끼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줄기차게 목적을 향해 갈 수 있게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변화시킨 사람은 이런 목적의식과 정체성이 분명하며 삶의 가치를 만족하고 역경에서도 승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 개인만 구원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가족 구원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혼자 예수 믿는 것은 조금 쉽지만 내 남편이 꼭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마음 편하게 생각하자고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31절에 바울이 자살하려는 감옥 간수에게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간수가 구원받으면 집안 모두 저절로 천당 간다는 말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개인개인이며 가족 중 한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가족이 다 천당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삼위 하나님은 소통으로 일체가 되시고 인간을 부부로 지으시고 소통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만유 통일의 대 사명으로 불러주시어 가정을 목적을 향해 하나되는 집합체로 구성해주셨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구원 받으면 그 사람 혼자는 좋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근본 뜻은 가정 모두가 구원받아야 구원의 완성이 되어 가족 모두가 하나 되는 일을 수행하고 왕권을 잘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부부를 주시고 가족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부 중 한 쪽만 구원받은 가정은 사실상 되다 만 반쪽 구원으로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못한 미완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을 수도 없고 사람 살 맛을 느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부부간 구원받은 가정으로서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정 구원이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 회복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가족을 소통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야 행복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가정 구원이 그래서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간수에게 이 소중한 비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한 사람 믿고 그 영향으로 꼭 가정이 다 구원받아 하나님께서 네 가정에 행복을 위해 주시고자 하시는 뜻을 이루어 사는 것이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목적 있는 아름다운 사회 기본 단위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실 것을 희망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네가 먼저 믿고 가정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라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가정이 구원 받아 하나님이 원래 결혼시키신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라는 명령입니다.

3. 萬有統一 召命의 삶

주님이 오셔서 개인을 믿음으로 구원하신 예수님은 가정을 몹시 중요시했습니다. 가정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기 때문에 교회가 예수님의 지체로서 어떻게 하나 되어야 하는가 교회의 목적은 무엇이며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룹니다. 그리고 가정이 하나 되듯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명을 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이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새우느니라.”(4:1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한 성령 안세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2)

부부도 하나되게 하기 위해 결혼하게 한 것처럼 교회도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교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성장하는 마디가 교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두 기관입니다. 하나되는 것이 사명이며 소명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부부간에 구원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 되어야 합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1:22-23) 예수가 통치하는 세상을 향하여 교회가 하나되어야 하고 가정이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먼저 하나 되는데 힘을 써야 하고 하나 되어서 만물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일 곧 복음 전도와 사랑으로 그도 구원 받아 하나되어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일에 가정의 목표로 삼고 살아야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結 論

나 개인도 구원 받은 목적은 하나님 나라 일꾼 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만 부족합니다. 그래서 결혼시켜 주었습니다. 배필과 함께 서로 협조하여 만유를 예수의 발 앞에 복종하도록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주님 빨리 오셔서 다스릴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목표를 그 곳에 두고 내가 할 일을 찾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교이고 그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억지로 중국 선교로 떠밀어 중국 선교 갔다 왔습니다. 제 일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만일 중국 선교를 하지 못했다면 무엇으로 살 수 있었을가 생각합니다. 힘들었지만 가정이 소망이 있었고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잘 되게 해 주셨고 힘이 들었지만 중국의 소수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져 앞으로 중국 다음 세대의 일꾼들을 훈련할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분주하게 시간이 모자라도록 할 일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 행복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알버커키에 또 교회를 시작하고 칼럼을 쓰고 설교를 준비합니다. 한 영혼이라로 가정이 구원 A아 행복하게 되기를 진정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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