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2020년 4월 19일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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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2020년 4월 19일 주일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시편 18:1-5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
한국 선거가 있었던 지난 15일 이후 참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제 동생도 예수 믿다 실망하여 열렬한 문제인 지지자가 된 현실을 보면서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있는 무식한 대중들에게는 결국 공산국가가 되던 사회주의 국가가 되던 나라꼴이 어렵게 되고 국민이 못살게 되어 사회주의 국가들이 겪는 가난을 통과해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아 정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진실과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가 가진 공통점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에게는 더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픈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말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윗의 시편을 보면서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대답은 성경이고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 되시는 분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목은 과거 충현교회 원로목사님이셨던 김창인 목사님의 주 설교로 유명한 제목입니다. 그 분은 정말 본문을 가지고 감동적인 설교를 하는 분입니다.
이 시는 제목에 쓰인 대로 다윗의 젊은 청춘기간을 송두리째 앗아간 망명생활 도피생활을 마친 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지은 시편입니다. 그는 아마도 이새의 8명의 아들 중에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서자로 태어났거나 아니면 혼외자식으로 태어났던 것 아닌가 하는 학자들의 주장들이 있습니다만 이새 가문에 막내로 태어나 형들의 따돌림을 받으며 목동 생활을 하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사무엘 사사의 선택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점점 정치적 지위를 높여갔습니다.
그는 사실상 목동 때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악기를 스스로 만들고 특히 시를 잘 써서 시편에 그의 시가 참 많이 남아있는 시인이었으며 음악을 작곡하고 합창을 지휘하고 악기를 만들어 오늘날로 말하면 오케스트라를 창시한 음악가였고 시인으로 문학가였습니다. 이런 특기를 가진 다윗이 먼저 사울왕가의 사위가 된 것입니다.
사울 왕이 아팠는데 귀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사무엘 상 16장의 기록에 의하면 성령께서 사울왕을 떠나니 악령이 사울을 괴롭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이 음악을 들으면 안정되곤 해서 결국 악동을 구해 치료를 받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블레셋 족속의 침범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전쟁터에 심부름으로 나가 적장 골리앗을 물맷돌로 죽인 후 일각 유명세를 타고 온 백성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을 갖게 되도록 이런 전쟁의 승리를 이끌게 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전쟁의 승리로 말미암아 다윗은 미갈이라는 사울의 둘째 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를 제치고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은 남을 꺽고 자기가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정적들을 무참하게 죽이거나 숙청합니다. 그것이 정치의 비극입니다. 다윗도 결국 자기를 시기질투하는 장신 사울 왕 때문에 젊은 청춘을 도피생활하며 망명생활로 때로는 위기를 닥칠 때 미친 시늉을 하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다 역경을 지나면서 인생 수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목숨을 부지하면서 지나왔던 그는 고난의 시간이 지난 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이 시를 시작합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이 어려울 때 힘이 되실 수 있었을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했길래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다고 하며 그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그의 시편을 3가지 구분해서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기도 들으시는 여호와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6)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는 필요한 연단이나 어려움이 없어지게 하기보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통해서 연단받으 더 큰 인물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환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했더니 성전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했더니 그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들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십시다. 그래서 도우시기 때문에 소통하기 때문에 힘이 됩니다.
사실상 어려울 때는 나의 말을 들어주는 분이 참 필요합니다. 들어만 주어도 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 배웠습니다. 상담을 하러 옵니다. 돈을 내고 상담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받습니다. 들어주는 것이 상담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 사정을 들어주기만 해도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들으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선택된 자기 자녀들과 소통하시기 위하여 기도 명령을 하시고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신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통하는 방법은 말씀을 보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구약의 선택된 지도자들은 모두 기도하는 분들이었고 대표적으로 모세 자신도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했던 사람이며 다윗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며 이스라엘 통일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기 전에 간구하는 것을 하나님은 주실 것인지 안 주실 것인지도 이미 아시고 결정하신 분입니다. 그럼 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우리 뜻대로 안 되는 일인데 왜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그것이 미신이나 우상을 만들어 기도하는 이방 신앙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시지만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시는 것은 우리가 말을 하고 나서 얼마나 위안을 받는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나의 도우미이심을 믿고 말을 하고 나면 소통한 후에 확신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대화자가 필요하고 대화를 통해서 말하고 나면 내 마음에 카다르씨스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도할 때 들어주십니다. 이 말은 내가 기도한대로 일이 되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경험상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기도해도 안 됩니다. 바울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병 낫기를 위해 기도했는데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병을 안 낫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반드시 기다려야 합니다. 안 이루어져도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알고 기다려보면 나중에는 안 이루어주신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생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자는 자기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시시 때때로 나의 의지를 충동합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려고 하는 것이 점점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내 마음은 원치 않지만 성령님께서 감동하셔서 입술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내 뜻으로 기도하면서도 그것이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는 기도가 되기 때문에 이런 기도는 기도하는 것마다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성숙하면 내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우선이 되고 하나님 뜻을 이루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서 저절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좋아하는 것만 골라 기도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즉각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는 자의 영적 호흡입니다. 호흡이 죽으면 영이 죽은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을 쉬어서는 안 됩니다. 안 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악까지 이용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안 되어도 응답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모두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기도가 바로 믿음의 호흡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의로 심판하시는 여호와
세상을 짧은 안목으로 보면 악한 자가 성공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한국인이 왜 공산주의자 문제인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이해가 안 갑니다. 때때로 의를 주장하다 보면 악한 자들에게 둘러쌓여 어려움을 당합니다. 때로는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함을 당하기도 합니다. 다윗도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특히 다윗은 몇 번이고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을 사로잡아 처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법도를 어길 수 없어 아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선을 베풀어도 알아주지도 못하고 누구하나 이런 다윗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럴 때 누구든지 악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됩니다.
요사이 한국이 되어가는 꼴을 보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자기에게 유익하면 그것을 택하는 무지한 백성들을 봅니다. 민주주의가 살아나려면 국민이 깨어야 하고 그래서 신앙을 가진 백성들만이 민주주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심을 노래합니다. 어쩔 때는 구름 뒤에 숨으시기 때문에 그의 하시는 일이 없는 것 같고 숨어계시는 착각을 합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가 흑암을 그의 숭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 하시도다.”(11-12) 하나님이 숨어버린 것 같은 답답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를 나타내실 때 인간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그의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그들을 깨뜨리셨도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티가 나타났도다.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13-16)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실 때를 보면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심판으로 임하셔서 의를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요사이 유럽의 상황을 보십시다. 이번에 쓴 글에 저는 코로나 바이러스 19번 우한 폐렴이 하나님의 진노임에 틀림이 없다는 이론을 가지고 통계적으로 현상을 지적했습니다. 왜 지금 하나님은 하필이면 문화 막시즘이 판을 치고 있는 미국. 스페인, 이태리, 풀란서, 독일 등 국가에서 힘을 못 쓰게 만들었을까요? 왜 이 병이 중국 우한에서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이들 나라들이 지금 동성애를 약자이니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2차 성해방을 노리고 온갖 추잡한 성행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은 가족과 자손을 유지하는 자손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이 자신들의 향락으로 전락되고 가정의 피의 순결성을 무너뜨리게 되면 그 사회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정을 창설하고 순결과 사랑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사회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가정을 성 향락이 점령하고 성해방자들이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퀴어 축제가 열리고 한국도 작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아세아 지역에서 가장 전파율이 높고 사망률이 높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과학이 무능해지고 인간의 지혜가 아무 효능이 없어지고 속수무책하게 만듭니다. 지금 우한 폐렴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이 폐렴을 막기 위해 인간으로서 인간되게 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차단하게 만듭니다. 오지도 못하게 하고 가지도 못하게 하고 사람간의 교제를 끊는 것이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죽어도 장례식도 가지 못하고 유명한 사람이 병 걸려 죽어도 6명만 참석하여 화장시켜버립니다. 국가가 그렇게 만듭니다. 참 21세기의 과학이 얼굴을 들지 못하는 병입니다. 먼지보다 작은 바이러스라는 생명체에게 굴복당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국가들이 21세기 나라꼴입니다. 하나님은 벌하실 때 인간이 막을 수 없는 방법으로 채찍질하십니다. 말로 해서 듣지 않기 때문에 경고를 주고 생며을 앗아갑니다. 그래야 조금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 허상인 유토피아를 내세워 평등하고 대우 받고 잘 살 수 있다고 민중을 속이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평등한 사회를 이룬다는 명목으로 백성의 지지를 받기 위해 바른 첨을 하며 많은 거짓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속여 정권을 잡으면 강제로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나누어주기 위하여 독제를 하게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권력은 집중되고 독재자가 생겨나게 되고 귀족 계급이 다시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무지한 백성들을 다시 탄압하고 그들을 수탈하여 소수의 지배 계급만 잘 먹고 잘 살게 만듭니다. 수많은 사람을 숙청하고 죽이고 살인하며 대량 학살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스탈린은 수천만을 죽였고 모택동도 수천만을 죽였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안경 쓴 사람들은 무조건 다 죽였다고 합니다. 지식인들을 무시하고 집권자들의 마음대로 하기 위해 잔소리하는 사람들을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어 백성을 노예화합니다.
사회주의도 그렇습니다. 베네주엘라가 그랬습니다. 참 좋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1950년에만 해도 베네주엘라는 세계에서 4번째로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석유 매장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였습니다. 땅 덩이는 조그만 하지만 석유만 팔아도 그 나라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국민 소득이 7,000 달라로 스위스, 뉴질란드, 미국 다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4.2배 넓은 땅을 가졌고 인구는 3천만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1935년-58년까지 군부가 25년간 지배하게 됩니다. 석유 가격이 높았을 때는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석유 가격이 떨어지자 점점 가난하게 되어 세계 4위에서 66위로 떨어지게 되고 이런 기회에 사회주의자 우고 차베스 사회주의자가 집권한 후로 지출이 과다합니다. 그런데 베네주엘라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1940년대에 민중주의 지금의 한국의 우리 민주당과 같은 민중주의 정당이 들어서서 집권하게 됩니다. 이들은 국민에에 퍼주고 선거 때마다 돈을 주고 표를 삽니다. 국민에게 돈을 주어서 선거마다 이깁니다. 결국 차베스가 집권하고는 군부 특권층을 기대며 특히 인근 큐바를 업고 집권하게 되고 미국을 배신하게 됩니다. 2019년도에 90%가 빈곤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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