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부활(確實한 復活) (2020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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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부활(確實한 復活)
2020년 4월 26일 이명길 목사
말씀: 고린도전서 15:50-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58)
부활절이 지난 지 벌써 2주가 됩니다. 부활주일에는 부활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어떤 삶이어야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우리 생애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내가 이미 죽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구원신앙을 가진 자들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저당했고 죽으면 산다는 법칙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부활하여 내가 예수 믿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죽음 후의 내세도 확실하고 주님 재림 시 내 몸도 부활할 것을 믿는다고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참 믿기 힘이 듭니다. 왜냐면 일상적이 아니기 때문이며 경험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차 다 육신이 죽어 하나님 나라에 가야하는 것은 알지만 사실상 내세를 준비하고 장차 일어날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며 죽으면 눈에 보이는 육체는 썩는 것을 보는데 우리 몸의 부활은 본 일도 없고 성경에서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 부활만은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완벽하게 설명하고 왜 우리가 부활을 믿을 수 있고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일까요?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인데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부활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장차 올 우리의 내세와 부활을 확신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의 말씀을 귀 기울여보십시다. 그리고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는 사도신경을 바로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신앙 고백인 사도 신경은 염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믿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내 믿음을 알리는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왜 장차 일어날 일을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믿어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하고 인생을 바로 살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고백이 왜 확실한 것입니까? 바울의 설명을 다시 확실하게 배웁시다.
1. 예수 復活의 確實性
부활을 말하려면 과연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것이냐는 것부터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부활 문제는 당시 시대 사람들도 보지 못한 사람은 믿을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쓴 바울이나 사도들 모두가 부활 문제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를 증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첫째로 성경의 부활 기록은 너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 공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과 제자들이 목격하고 목격담을 당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환상이었다고 하는데 환상일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진실을 쫓는 사람들이고 선한 일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인데 보지 않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그렇게 상세하게 기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당시 예수님 부활의 증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개인적인 환상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환경에서 부활 후의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도 많고 부활 당시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만져본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아무리 비밀리에 행한 일도 두, 세 사람의 증인이면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구약 시대의 증명 방법이며 지금은 한 사람의 증거도 진실성이 보이면 사실로 인정하는데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셋째 예수님 생전에 죽음과 부활을 공공연하게 말씀하셨고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의 부활을 아주 중요한 구원 역사적 사실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은 그가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실수도 없고 성취하지 못하는 일도 없고 진실이 아닐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오셨고 말씀대로 사셨고 말씀대로 죽으셨고 말씀대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성경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구약 성경에서 장차 메시야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사망을 정복하실 것을 예언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십자가 부활을 중심으로 구원 사역을 이루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든 말든 십자가 부활은 구약의 중심 사상이며 메시야의 중심 역할이었습니다. 죽음의 정복이 구원의 목표였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 15:3-8에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12 제자와 그 후에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ㄱ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사도들의 목숨 바친 전도를 볼 때 확실합니다. 만일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어두운 당시 세상에서 어떻게 목숨 바쳐 순교하며 전도할 수 있었을까요? 누구든지 자기 목숨은 사랑합니다. 죽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것은 믿던 안 믿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모든 것이 거짓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었고 기독교의 중심이고 가장 확실한 부활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이고 기독교의 고백이고 우리가 전파하는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2. 죽음 征服의 成就
그럼 예수님의 부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상에 오실 때 육신을 입을 필요도 없고 죽으실 필요도 없고 부활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로 오신 주님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죽어주셔야 내 죄를 사할 수 있는 대가 지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부족하고 죄인이어서 남을 죽어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구약에서 짐승을 드렸지만 그것은 예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대신 받았으나 그것은 장차 인간 아닌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죽어주실 것을 예견하는 예표였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실 목적을 완전하게 달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일시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나셔야 했고 살아나심으로 궁극의 구원의 목적을 달성하신 것입니다. 구원 받은 모든 분들이 사망을 이기고 정복하는 것이며 죽음을 정복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필경은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25:7-8에서 예언합니다. 역사의 종말에는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서 바울은 선언합니다. “사망아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렇게 선언합니다. 결국 죽음을 정복하는 것이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며 구원의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망을 이긴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죽음을 정복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죽음에 순응하면서 사실상 죽음을 계기로 바뀐다고 말하고 그들의 영생은 지상에 다시 오는 회전이라고 말합니다. 설명을 하지만 정복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정복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예수님처럼 죽음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더 이상 우리의 삶에 화살을 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인간의 원수인 사망을 멸하려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멸하셨습니다.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도 구원 받아 이 세상사는 동안 부활생명으로 구원의 삶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나중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오늘의 현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죽어서 육신을 벗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 있다가 주님 부활하는 날 우리 몸도 썩지 않을 것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입니다.
3. 썩지 않는 肉體로 復活
사도 바울은 앞 절에서 선언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는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15:42-44)
예수님이 육신의 부활 후에 자기 몸을 손을 데게 하셨습니다. 영이면 만져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이기 때문에 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40일 후 승천하실 때 육체 그대로 승천하시고 그대로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육체의 몸으로 하늘에 오르셨고 육체의 몸으로 재림할 것입니다. 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로 부활합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죄악 된 육체를 벗어버립니다. 그리고 땅에서 온 육체는 썩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심판대 앞에 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집니다. 사실상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부활한 삶을 살기 때문에 심판 대 앞에서 우리 죄악의 대가로 판단을 받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기 때문에 그 피로 인해 구원된 사람은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이르게 되고 불신자는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연옥설은 천주교에서 돈이 필요해서 만든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이론입니다. 오직 믿는 자만 구원을 얻는데 그것은 우리의 행위가 옳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자들이 지상에서 살면서 지은 죄 역시 십자가의 피로 사함을 받고 천국으로 이송됩니다. 그 곳에서 주님과 함께 천국 생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래 창조 시 인간의 육신을 주시면서 영원히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이 늙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었는데 그만 마귀의 유혹에 빠져 죽음이 인간에게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불지옥에서 건져 천국 생활하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홀연히 우리 모두 육신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전에 있던 썩을 육신이 아니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육체입니다. 그 육체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結 論
부활절만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부활하여 부활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부활한 구원의 삶이 우리에게 보증이 됩니다.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세상이 바뀌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예수님 재림 시 다시 영의 육체를 입고 전혀 새로운 썩을 육체가 아니라 영의 육체를 영원한 죽지 자이날 육체를 입고 영원히 지상에서 살 것입니다.
그 영원한 삶에 우리는 이미 입성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절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자초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하는 것은 생명을 하나님께 맡긴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생명을 결단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지으신 창조주를 멸시하고 자기가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께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자살은 인본주의적 불신앙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손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두려움 없이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가 두렵습니까? 두려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걸려도 살릴 사람은 살립니다. 안 걸렸어도 죽을 사람은 골라서 걸려 죽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니 맡기고 우리는 말씀을 순종하며 살게 되면 육신의 장막을 벗은 후 주님 재림하실 때 영의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영원이 영원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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