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治療하는 光線 (2020년 4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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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길목사
댓글 0건 조회 2,306회 작성일 20-10-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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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治療하는 光線

 

202045일 주일 예배 설교                                                                                                                             이명길 목사

 

말씀: 말라기 4:1-8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2)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소개를 받았는데 하나님의 이름도 아니고 공의나 사랑의 이름이 아닌 치료의 하나님여호와 라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소개하면서 자기는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비의 하나님, 의로운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많은 하나님의 성품을 담은 이름을 소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말라기는 이스라엘 최후의 선지자 말라기가 쓴 선지서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시기를 마치고 다시 회복하지만 하나님은 최후의 그 날에 심판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종말은 무서운 심판입니다. 마치 용광로 같은 불길로 마지막 심판을 하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춰주겠다고 하십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셔서 여호와 라파이심을 나타내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은혜를 강조합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여호와 라파라고 소개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법도를 주신 것은 그들을 성민으로 하나님 백성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렇게 삶으로 말미암아 에굽 백성과 같은 질병에 걸리지 않게 성민의 삶을 살아 먹는 것으로 병들지 아니하고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살게 되어 성민으로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을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전인 치료의 은혜를 입고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이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치료하신 것이라면 성경은 인간을 살리고 치료하는 치료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병들기 쉽고 죽음의 병에 걸려 신음하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 치료를 위해 율법도 주시고 성경도 주셨고 필경은 의로운 태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게 하신 것입니다. 치료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육과 영을 건강하게 치료하는 책입니다.

진정한 치료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첫 번째 죽음은 누구나 동일하게 당하는 죽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려고 몸부림치고 질병이 오면 무서워 벌벌 떠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의 병 두려움에 걸려서 꼼짝딸싹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병에 걸리면 잠을 못자고 육체가 망가져도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신자는 둘째 사망을 이긴 사람입니다. 육체는 죽어도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기 때문에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하고 죽음을 넘어선 평화가 있습니다. 실제로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1. 鎔鑛爐 같은 그 날

말라기 선지자가 4장에서 말하는 그 날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마지막으로 심판하시는 최후의 심판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후 심판하신 심판은 물이었습니다. 노아 홍수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여 물로 인해 숨 쉬는 모든 것은 다 죽게 했습니다. 물론 노아를 통해 배에 들어간 생물들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물속에 살 수 없는 숨을 쉬는 모든 짐승과 기는 것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무지개 싸인을 통해서 하아님은 다시는 물의 심판이 아니라 불의 심판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전쟁으로 심판하거나 질병으로 심판해 왔습니다. 물론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전 세계적인 질병과 전쟁을 통한 불 심판이 있었습니다. 불로 태워버리는 심판도 뜨겁게 살라버리지만 질병도 사실은 뜨거운 심판입니다. 병은 모두 몸에서 열을 내며 열이 심하면 결국 죽게 됩니다. 병균에 침범해도 이를 막고 싸우는 몸 안에 벽혈구는 싸우면서 엄청난 열을 발생하게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번도 심한 열이 발생합니다. 균과 싸우기 때문입니다. 아마 몸이 견딜 수 없이 심한 열이 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든 뜨거운 심판입니다.

지상의 모든 불행과 재앙은 이런 최후의 심판을 닮은 소형의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한 공의의 채찍이며 심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재앙을 만나면 먼저 재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재앙이 와도 재앙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엊그제 웨스트민스터 학장과 세계적 석학들이 화상 토론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Time Magazine에 어떤 무신론자가 코로나가 재앙인지 증명해보라고 기독교인들의 설교를 비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역병이 크고 작던 간에 하나님의 징벌로 묘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병의 출발과 치료와 병균의 변이를 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공포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구약 시대라고 하나님이 나타나서 글자로 써주거나 선포해준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들이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이며 심판인 것을 인식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판은 반드시 당하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을 해야 기뻐하시고 징벌은 끝이 납니다. 거기에 과학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한계가 있는 과학으로 하나님의 영적 영역까지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대 재앙이 있었고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대 재앙이 있을 때 성경은 이런 원리를 보여줍니다. 질병 자체가 꼭 심판 받아야 할 사람에게만 전해지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지 않는 한 선택된 자도 심판인 역병에 걸려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입니다. 선하게 살았다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과 같은 특별한 은혜가 있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백성도 병에 걸려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징벌의 대상으로 하나님께서 개인의 범한 죄를 심판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오류입니다. 초대 기독교도들이 역병을 당할 때 죽음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고 시체를 치우는 일을 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 병에 걸려 죽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은 병에 안 걸리는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병에 걸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역병이 지나면서 역사는 바뀌고 사람들이 변하여 사회의 새로운 개혁 바람이 분 것만은 사실입니다. 중세기 14세기 중반의 콜레라 역병이 중세 사회를 변화시켰고 럽 인구 수천만이 죽었지만 살아 남은 자들을 통해 인류 역사는 새로운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번 역병이 중국 우한이라는 1400만 명의 대 도시에서 난 것, 특히 문화 막시즘으로 가정을 파괴하고 거룩한 인간의 성을 자극 온갖 해괴 망칙한 성해방 운동을 하고 있는 퀴어 축제를 하고 있는 나라들, 좌파나 공산주의 나라들, 미국고 같이 문화 공산주의에 빠져 온갖 사회 혁명적 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들에 많은 것을 주시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유럽의 이태리 스페인 불란서가 그렇고 영국이 하나님을 버리고 문화 막시즘에 빠져서 사회 대 변혁을 일으키는 그런 곳에 이 병에 맥을 못 추는 현상을 어떻게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무신론자들이나 좌파 사람들은 어불성설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반응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멸망당하는 역사를 얼마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나치게 불순종으로 타락할 때마다 역병으로 경각심을 주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분명하게 우한 포로나 역병은 세계적이며 수 많은 인명 피해를 입혈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서구 사회의 병폐를 깨닫고 고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역병을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필두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심판이 있을 때 심판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은 하늘로부터 광고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를 분별할 줄 아는 기독교인부터 먼저 잘못된 미지근한 신앙 거짓 믿음부터 회개하고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선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 돌이키게 하리라

오늘 말씀 끝 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크고 두려운 그 날 이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고 말씀합니다. 엘리야가 다시 난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엘리야는 구약 선지 시대를 열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선지자입니다. 가장 어려운 때 북쪽 왕 아합왕 때에 이스라엘에게 강한 회개의 폭풍을 일으켰던 선지자입니다. 이 선지자가 다시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로서 예수 그리스도 직전에 와 자신이 엘리야로 왔다고 선언함을 볼 수 있습니다. 목적은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아버지께로 자식들이 돌아오게 하는 일을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으로 모두를 다 쓸어버릴 때에 미리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작업을 먼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보면 약속한 엘리야의 돌이키는 사역이 얼마나 강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 나가서 외치는 소리였고 요단강에서 세례 운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가 올 심판에 대비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의 멧세지를 한번 보십시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저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들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들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복음 23:33에 보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렇게 독한 말로 회개를 촉구합니다. 엄청난 영적 능력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심판이 이르기 전에 사람들을 돌이키도록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이 시대도 세례 요한이 필요합니다. 서구의 이 변태적인 성 문화를 보고 퀴어 축제를 허가하는 한국의 좌익 정권의 행태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불충입니다.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외쳐야 합니다. 듣고 나아오는 자는 심판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3. 治療하는 光線

말라기는 확실하게 예언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치료하는 공선을 쬐러 그 앞에 모여 치료 받은 사람들은 외양간에 갇혀 있다가 풀려 나온 송아지 같이 방방 뛰고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치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전인 치료를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사망이나 질병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성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가 바로 진정한 치료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과거에 비하면 의학이 참으로 많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수명도 연장된다고 합니다. 옛날보다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치료기간이 아니라 지금은 고통도 줄이고 원인을 찾아 수술도 해서 전보다 훨씬 좋은 깨끗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살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같이 고가의 의료비 충당을 위해 의료 보험 제도를 두어서 늙으면 평안하게 치료 받을 수 있고 그래서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의사들의 말을 빌리면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못 고치는 병이 고칠 수 있는 병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의사들도 무슨 병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질병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약이 좋아서 어지간하면 비슷한 약을 처방하면 그것을 먹고 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병은 상관이 없는 약을 주면 먹고 나았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심리적인 병을 이렇게도 고칩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사역을 시작부터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인기를 끌거나 주의 집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치유의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며 인간을 치유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구원사역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치료였습니다. 그래서 병 고침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꾸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피하기도 하시면서 계속해서 치유사역을 행하셨습니다. 몸의 치유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까지도 치료하셨고 믿는 자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전인 치료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치유는 완전한 것이며 인간에게 육신과 마음의 질병까지 완전하게 고치는 전인치료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 목숨을 내어주셔서 질병의 근본적인 죄의 치료를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죄 값으로 지불하시고 질병의 근본인 죄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結 論

성도 여러분! 코로나 19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벌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코로나 19에서 치료를 받고 나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근본 질병인 죄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몸의 역병보다 더 아프고 악랄한 것은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제 2의 사망인 것입니다. 그게 진짜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 몸에 들어오는 병균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두려워 벌벌 떠는 불신앙에서 벗어나 치료하는 광선으로 얼굴을 돌려야 합니다. 말씀으로 깊이 회개하고 살아남은 자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에 젖어야 합니다. 치료하는 광선을 쬐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괴질의 역병 과정 중에도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고 근본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뒤집혀도 우리만은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가짜 신앙인들을 깨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값싼 위로나 하고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와서 이 질병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질병이 지난 후 치료의 광선을 쬔 의의 사람들이 새롭게 이룰 주의 나라 공의와 자유가 가득찬 나라를 향하여 일어나 전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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